초중고 SW 교육 의무화 반대, 두번째 이야기

며칠전에 쓴 초중고 SW 교육 의무화 추진을 중단하라 글에 제가 예상치도 못했던 엄청난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페이스북과 블로그 본문을 통해 반박 의견도 일부 있었지만 공감한다는 의견과 페이스북 좋아요가 줄을 이었네요. 사실 저는 이런 일로 주목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아닌, 가평 시골에 묻혀 제가 하고 싶은 일이나 골라서 하고 사는 속편한 사람이라 이런 주목이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다만, 이후 페이스북 등을 통해 나온 의견 댓글들에 답하는 과정에서, 제 주장의 배경을 더 설명하고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제게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들과 SW정책에 대한 비판은, 예전엔 글을 많이 썼었습니다만 최근에는 제 주관심사가 아닙니다. 40이 훌쩍 넘은 지금은 그럭저럭 먹고 사는 데에 만족하고 시골 생활을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때는 업계 문제에 많은 주장을 늘어놨었고, 또 지금도 개발자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 한번은 정리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좀 등떠밀린 느낌까지 받아가며 써봅니다. 이번에는, 저번 글보다 좀 더 바닥으로 내려가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기피직종이 된 SW개발자

이 업계의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시피, 지난 2000년대 후반부터 SW 관련 학과는 비인기 학과가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처음 대학에 입학하던 1991년만 해도 SW 관련 학과는 최고 수준의 인기 학과였고, 국내 최고의 커트라인을 자랑하던 곳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였습니다. 서울대 의예과보다도 커트라인이 더 높았었죠. 그런데 지금은 한마디로 ''아 옛날이여~'' 입니다.

많은 학교들의 SW 관련학과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믿기 힘든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고, 심지어 몇년째 정원미달을 견디다 못해 폐과까지 해버리는 경우도 그리 드물지 않게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몇몇 교수님들도 학과장까지 하면서 오랫동안 근무해오던 학과가 하루아침에 폐과되어 일반 교양 교수로 돌고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분명히 기억하건대 90년대 말,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SW개발자는 일반 사회로부터 선망받던 직종이었고 SW 관련 학과가 정원을 채우지 못한다는 상황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벤처거품이 꺼져버린 후에도 그런 열기는 그다지 식지 않았었고요. 그럼 지난 10년 남짓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SW 업계가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것일까요.

외부로 터져나온 SI업계 현실 고발

그것은 단 한가지 이유, SW 업계(정확하게는 SI 업계)의 열악한 현실이 일반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SI 업계의 문제들이 SW 업계 내에서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정도였습니다만,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04년 정도였습니다. 그 즈음 다음 아고라에 "IT 업계를 떠나며" 등의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요. 이런 글들에서는 강압적인 야근 강요와 야근 수당이 없는 문제, 일정이 무한정 늘어지는 문제, 외부에는 고급 전문직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단순 노역직에 가깝다는 내용 등이 폭로되었습니다.

이런 글들이 올라올 때마다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개발자들은 동감을 표시했고 일반인들은 ''놀랬다, 그게 사실이냐'' 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이런 고발 글들이 아고라에 공개되어 폭발적인 관심을 끈 것만 따져도  2004년 정도부터 2007년까지 거의 1년에 한두차례씩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뻔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때쯤부터 SW 업계에 인력 유입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SW 학과 지원자들도 크게 줄었습니다. SI 업계에 인력이 좀 부족한 것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현상입니다만, 이런 일들이 수차례 일어나고 나서는 매번 SI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필요한 인력을 채우지 못해 난리를 쳐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고도 2007년 후로부터 고발 글들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이젠 알려질만큼 알려졌으니 전보다 덜 이슈가 될 뿐입니다.

SI대기업들이 정부에 SW 개발자를 대량 양성해달라는 목소리가 급격히 커진 것도 이때쯤 부터였습니다. 프로젝트 착수부터 심각한 애로에 직면하게 되었으니까요.

2010년의 농협 산재 사건

이런 SW 기피 흐름에 아예 쐐기를 박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2010년에 터졌습니다(실제 처음 알려진 것은 2009년말입니다). 농협 개발자 산재 사건입니다. 농협의 전산시스템을 개발하던 개발자가 오랜 과로와 야근으로 폐를 일부 절제하는 대수술을 받고도, 회사측의 거부로 산재보험 처리를 받지 못하고, 퇴직하면서도 그동안의 야근 수당 지급도 거절당한 일입니다. 이 사건은 핵폭탄급 이슈가 되었고, 소송까지 간 끝에 총 4500시간의 야근 시간 중에 1400시간만 인정받았습니다.

이 사건이 국내 SW업계에 얼마나 결정적인 충격을 안겼는지는, 일전에 제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구글 트렌드 분석을 통해, 2010년에 국내 개발자들의 모든 프로그래밍 언어 관련 검색량이 폭락 수준으로 주저앉아버렸는데요.

2010년, 대한민국 IT 업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위 그래프를 보면, 2004년에 최대치를 이루다가 2005년부터 하락세에 접어들고, 2007년까지 꾸준히 하락하다가 2008년 이후 소폭 상승하던 추세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랬던 것이 2010년에 대폭락 사태를 맞은 거죠.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같은 기간에 대해 한국이 아닌 전세계를 대상으로 같은 분석을 해보면, 전반적으로 미미한 하락세이기는 합니다만 우리나라의 2010년과 같은 폭락세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개발자들은 항상 검색을 한다''는 것은 진리(?)이기 때문에, 프로그래밍 관련 검색량이 이렇게 일순간에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은 개발자의 절대 숫자가 줄어듬과 동시에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관심도도 크게 줄어들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2010년 농협 사건으로 개발자들이 SW 업계에서 대량 유출되고 있거나 적어도 이탈을 적극 고려중이라는 정황을 볼 수 있습니다.

SW업계의 문제인가, SI업계의 문제인가?

그런데 이런 문제가, SW 업계 전반의 공통적인 문제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한 점이 많습니다. SW 업계는 세부적으로 SI 업계, 패키지/솔루션 업계, 기타 임베디드 등의 업계들이 있는데요. 편의상 ''SI 업계''와 ''솔루션 업계''로만 나눠서 보겠습니다.

국내 SW 업계 전체에서 SI 업계의 비중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60%가 넘으며, 많게는 80%까지 보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70% 전후 선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이것은 기업의 관점인 매출, 이윤의 관점보다는 각 분야에 종사하는 개발자의 숫자에 의한 체감입니다.

만약 SI업계의 비중이나 매출 등을 학계나 업계의 원론적인 개념으로 통계적으로 분석한다면 60%보다 훨씬 적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통상 개발자들이 말하는 ''SI''라는 용어의 의미는 원론적인 의미에서의 SI, 즉 System Information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요구에 따라 파견되어 개발하는 1회성 개발 프로젝트''를 뜻합니다. 그 실제 개발 내용이 원론적 의미의 SI가 아니라고 해도 실제 일하는 방식이나 환경 등은 거의 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넓은 의미의 SI''의 특성이 몇가지 있습니다. 매 프로젝트가 단발성이기 때문에 개발자를 장기고용하려 하지 않고 주로 계약직으로 전체 인력을 채웁니다. 예를 들어 총 100명의 개발자가 필요한 프로젝트라면 그중 정규직은 10%~20% 이내이고, 심한 경우엔 PM급 한두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계약직일 수도 있습니다. 프로젝트 참여 인력의 절대 다수가 단기 계약직이기 때문에 향후 고용이나 인사상의 처우, 근무 환경 등을 개선하려 하지 않습니다.

SI 업계의 또다른 특징은, ''개발 작업의 공정화''입니다. SW 이론에서는 SW 개발을 건축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SI에서는 건축보다는 오히려 제조업과 더 유사합니다. 이게 실제로 일을 하는 개발자의 입장에서 어떤 의미이냐 하면,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있는 자동차 공장 노동자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고도의 숙련자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만약 유사시 개발자 한명이 빠져버렸거나 추가 인력이 필요할 경우에도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SI 프로젝트를 위한 계약직 구인 공고들을 살펴보면, 4~6년차 정도의 초급 개발자(''코더''라고 하죠)에 대한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습니다. 코딩은 조금 할 줄 알지만, 그렇다고 과도한(?) 지식과 경험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10년차가 넘으면 나이로 대부분 40줄인데, 이쯤 되면 나이가 어리면 마구 하대하고 보는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상 마구 부려먹기도 좀 불편하고, 또 임금도 더 많이 달라고 하니 SI 기업들이 선호하지 않습니다.

요약하자면, SI 개발자들의 다수는 매번 새 프로젝트를 찾아 헤매야 하는 고용이 불안한 단기 계약직이며, 근무 환경은 열악하고, 40줄이 넘어가면 밥줄이 끊어지기 십상입니다. 이것은 현대자동차 등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파견 노동자의 문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제가 SI를 건축이 아닌 제조업과 더 유사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솔루션 업계의 환경이 월등히 더 좋다고만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SI쪽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직접 고용률도 훨씬 높고, 개발자의 기술과 경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경력 년수에 대한 존중과 배려도 있습니다.

그런데 SI 업계에 일하는 개발자들이 전체 SW 개발자들 중 70% 정도로 추산됩니다. 그러니 ''SI의 열악한 현실''이 ''SW의 열악한 현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일반인들이 SI 업계와 솔루션 업계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기를 바라기도 어렵고, 결과적으로 모든 SW 업계가 그꼴로 돌아간다고 인식될 수밖에 없는 거죠.

SW개발자 양성 정책은 SI대기업들의 이익에만 봉사

그럼, SI 업계가 이렇게 열악한데도, 그 반발에 의한 개선 움직임은 없었을까요. 이런 종류의 케이스에서 일반적으로는, SI 개발자가 크게 줄어들어 어려움에 처한 SI기업들이 어쩔 수 없이 개발자들에 대한 처우를 높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결과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점진적으로 더욱 더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럴 수는 없는 거죠. 이 문제에 개입한 장본인은 정부와 SI대기업들입니다.

SI대기업들은 개발자 수가 크게 줄어 정상적인 영업에 어려움이 커지자, 개발자에 대한 처우를 높여줘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정부에 로비를 강화했습니다. SW 개발자를 대량으로 양성해달라고 말입니다. 이미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개발자 양성 정책으로 개발자가 크게 늘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인위적으로 개발자 수를 늘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실제로 매년, 매 정권마다 SW개발자 양성 정책이 시행되었고, 국민의 세금인 예산이 투입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전형적인 ''밑빠진 독에 물붓기''입니다. SI라는 산업 자체가 밑바닥에 큰 구멍이 있어서 아무리 물을 퍼부어도 계속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국비로 개발자를 아무리 양성해서 공급해도, 모바일 개발 등의 다른 SW 업계로 가거나 아예 SW 업계를 떠나 치킨집이나 편의점 등을 차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더욱이 이 SI업계라는 장독은 정부가 챙겨야 할 국가적 대계에 속하는 문제도 아니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장본인들인 SI대기업들이 먼저 자체적으로 최대한의 노력을 한 후에 손을 벌려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서 정부와 SI대기업들이 지금까지 매번 내세운 명분이 ''SW가 국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SW가 미래 산업의 핵심이기 때문에'' 였습니다.

이번에 미래부와 교육부가 추진을 강행하겠다고 발표한 SW교육 의무화 정책은, 지금까지의 ''SW개발자 양성 정책''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세운 명분은 이전과 똑같습니다. 다만 이전처럼 단발성으로 SW개발자를 양성해서는 도저히 밑빠진 독을 채울 수가 없으니 아예 전국의 모든 아이들에게 SW 교육을 의무화시켜, 빠져나가는 인력 유출량에 비해 공급량을 절대적으로 늘려버리겠다는 정책인 것입니다.

실제로 SW교육 의무화에 대해 가장 많은 목소리를 내면서 교육계의 ''밥그릇 지키기''로 적극 매도하는 언론이 하나 있으니, 한국경제신문입니다. 다른 언론들도 이따금씩 그런 논조의 기사를 싣기도 하지만 유독 한국경제신문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 한경은 전경련 기관지라고 불릴 정도로 전경련의 목소리를 그대로 대변하기로 유명한데, 실제 한경은 현대차, 삼성, LG, SK 등이 주요 주주이고, 나머지 지분도 전경련 회원사들이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경련은 아시다시피 IT대기업들을 계열사로 갖고 있는 재벌들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총 12년 동안 의무적으로 SW 교육을 시키면, 고등학교 과정까지 정상적으로 이수한 아이들은 곧바로 SI 현장에 초급 개발자로 투입이 가능할 수 있고, 그게 안되더라도 초단기 실무 교육 한달 정도면 투입이 가능해질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전국민의 예비 SI 인력화, IT대기업들에게는 정말 야심만만한 계획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야심만만한 계획에 국민과 아이들, 개발자들에 대한 배려는 없습니다.

SW업계를 쥐고 흔드는 또다른 손, 통신업계

앞에서 SI대기업들의 음흉한 속내를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SW업계를 왜곡시키려고 하는 것은 SI대기업들만이 아닙니다. 통신업계가 있습니다.

몇년 전부터 정부와 업계를 통해 뜬금없이 ICT(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라는 용어가 언론을 오르내리고 있는데요. 그전에는 없던 용어는 아니지만, IT와 달리 ICT라는 용어는 그리 흔히 쓰이는 용어가 아닙니다. 이 ICT라는 용어가 언론에 등장하는 기사들의 내용을 보면, 하나같이 통신업계에서 나오고 있는 얘기들입니다.

따지고보면 IT라는 용어 자체가 통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IT 산업은 처음 정보통신기술, 즉 ICT에서 출발했고, IT는 통신 위에서 돌아가지만, 통신과는 떨어져 독자적인 업계가 된지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통신업계 관계자들이 굳이 통신을 IT에 끼워넣어 일반적이지 않은 ICT라는 용어를 언론에 등장시키는 것은, 이것이 통신업계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SW를 외치는 미래부의 고위직들을 보면, 장관들과 차관들이 모두 통신업계의 사람들입니다. 미래부를 처음 만들면서 장관으로 앉히려고 했던 김종훈씨부터, 1대 최문기장관, 이번에 임명된 최양희장관 모두 통신업계 출신이고요. 차관들도 그렇습니다. 이번에 2차관을 연임에 성공한 윤종록차관도 역시 통신업계입니다. 이들의 프로필을 보면 공통적으로 보이는 이력이 있습니다. KT 근무 경력이죠.

예외라고 할 수 있는 이상목 전 1차관은 과기부 관료 출신으로, 미래부가 과기부도 통합한 관계로 과학기술계의 몫으로 임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후임인 이석준 1차관은 기재부 출신으로 역시 SW와는 무관합니다.

즉 미래부가 SW를 그렇게 내세움에도, 미래부의 전현직 장차관에는 SW업계 출신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 비슷한 거라도 찾아보려 노력해보면 그나마 나오는 것이 SW정책연구소의 김진형소장을 들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SW정책연구소는 정식 정부 직제도 아닌 특별법으로 신설한 것으로, 미래부의 직속 산하기관도 아니고 미래부 산하인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의 다시 산하에 있습니다. 현재 홈페이지조차도 없으며, 연구원 초빙 공고조차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 올려져 있습니다. 이쯤 되면, 상식적으로 이 기관은 장기적으로 SW정책을 연구하기 위한 오랜 고심의 결과가 아니라 SW를 중시한다는 모양새를 내기 위한 구색용이라는 판단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최근에 제 글에 댓글로 단 내용을 보면, SI만 SW가 아니니 SI에 묶이지 말라는 뜻의 글을 쓰셨는데요. 저야 SI판이 어떻게 돌아가든 직접적으로 제가 이해관계는 별로 없습니다만, 국내 SW업계의 70% 내외를 차지하는 SI를 간과하고 계시는 분이 SW정책연구소의 소장으로서 뭘 하실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미래창조과학부는 장차관을 통신업계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예전의 정보통신부와도 마찬가지죠. 정보통신부 당시에도 저는 정통부가 SW는말로만 내세우면서 통신업계 정책을 주로 다룬다는 점에 대해 많이 비판을 했었는데, 지금도 원래 그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부에서는 SW를 떠들지만, 그 이면을 뜯어보면 예나 지금이나 통신이 SW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결국, 국내 SW 산업은 SI대기업들과 통신업계라는 두 개의 큰 힘이 양쪽으로 붙잡고 있는 셈입니다. 극단적으로 왜곡된 SI업계의 문제 따위는, SI대기업들은 당연히 회피하고 통신업계 출신 고위관료들은 나몰라라입니다. SW업계를 움직이는 두 개의 거대한 손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문제를 더 심화시킬 정책만 내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교육정책은 교육부의 소관이다

미래부는 교육정책에 건의와 협조는 할 수 있어도 주무부처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SW교육 의무화 논의는 처음 시작부터 철저하게 미래부가 독단적으로 밀고 나갔습니다.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계속 반대하며 버티다가, 결국 이번에 굴복해버린 것입니다. 그동안 버티다가 결국 무너져버린 것은, 발표 당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입시와 연계해야 한다''는 논조의 언급까지 한 것을 보면,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이 교육부에 지침을 내려 굴복시켜버린 것으로 강력하게 추정됩니다.

그런데 저번글에서도 썼듯이, 특정 부처와 정권이 교육부가 압력을 행사해 아이들의 공교육과정에 새로운 과정을 추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실제 주무부처 교육부 외에도 교육의 시행자들인 교육계에서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같은 논리로, 초중고등학교 과정에 ''MBA''를 추가하면 국가 경제가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잘하면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왜 ''잡스''만 양성하려고 합니까, 워렌 버핏도 마구 양성하면 좋죠. 역시 군사교육을 초중고 과정에 추가해서 제2의 이순신을 대량 양성하면 세계 최강의 군사 대국이 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교육과정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동안 교육계와 사회 전체가 논의해서 만들어진 치열한 사회적 논의의 결과물입니다. 거기서 뭘 빼는 것도, 뭘 더하는 것도 특정 업계 한군데에서 밀어붙여서는 안됩니다. 영어 조기교육처럼 어릴 때 무엇이든 일찍 배워두면 어떻게든 좋은 일이지만, 특정 학문을 강제로 교육과정에 추가해서 그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그 누구보다도 교육계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학부모들의 목소리도 광범위하게 청취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번 SW교육 의무화 조치에 대해서는 그런 과정이 통째로 빠졌습니다.

SW교육 의무화가 개발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정말로 의외로, 초중고등학교에 SW교육을 의무화한다는 발표에 많은 개발자들이 환영 의견을 밝히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충격적인데요. 원칙의 문제를 떠나 개발자들 스스로의 손익관계만 봐도 재앙입니다.

비교할 수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최근 여러해 동안 지속적으로 사시 합격자수 증가에 로스쿨 제도까지 생기면서, 시중에 변호사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었습니다. 그 결과 변호사들은 해피해졌을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변호사들 모두가 불행해졌죠. 변호사들의 취업 시장과 초임 평균임금이 대폭 하향평준화되었습니다. 무급이라도 좋으니 일단 일만 시켜달라는 변호사들이 생겨났고, 얼마전에는 부산시가 변호사를 7급 공무원으로 채용하겠다고 공고를 냈다가 사법연수원생들과 변호사들의 엄청난 반발 끝에 정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럴만 하죠. 사법연수원생도 공무원 5급인데 수료한 후 정식 변호사가 됐는데 7급으로 뽑겠다니요. 7급행은 막아냈지만, 최근 공공기관에서는 6급으로 채용하게 되는 것이 흐름입니다. 역시 사법연수원생보다도 낮은 직급입니다.

변호사는 고작 몇배 정도 늘어났는데 변호사 시장에 그런 대란이 일어났고, 이제는 수습조차 안됩니다. 변호사들 대부분이 걱정하는 문제이지만 해결책이 없습니다. 아, 저는 변호사가 아니니까 제3자로서 기본적으로 나쁜 일은 아닙니다. 당장은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민들도 전보다는 더 낮은 비용으로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겠지요.

모든 초중고등학교 과정에 SW교육을 의무화시키면, 앞서 썼듯이 고등학교까지 정상적으로 이수한 사회초년생들은 사실상 예비 SI개발자입니다. SI에서 요구하는 초급 개발자의 수준이 높지 않고 단순 업무 숙련만 하면 되므로, 초급 SI 개발자가 시장에 넘쳐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SI대기업들은 그보다 좋을 수가 없습니다. 당장 인력을 못구해서 엄청난 애로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상상만으로도 어께춤이 덩실덩실일 겁니다.

그런데 개발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이렇게 초급 SI개발자가 된 사람들은 그 숫자가 넘쳐나는 만큼, 지금 임금 수준에서 몇분의 일도 받지 못할 겁니다. 대졸 졸업장도 필요가 없습니다. 고졸이어도 충분하죠. 그럼 초급 개발자들만 타격을 입을까요. 아닙니다. 임금 하락은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초급 개발자들의 임금이 몇분의 일로 줄어들면 중급, 고급, 특급 개발자도 줄줄이 임금이 하락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입니다.

이런 것을 정부측에서는 ''실업자 대책''이라고도 설명합니다. 아니죠. 실업자들을 아예 고사시키는 대책입니다.

 소수 사례가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가

몇몇 개발자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스크래치 같은 걸로 프로그래밍 교육을 시켜봤는데 정말 잘 배워서 놀랐다는 근거를 대면서 SW교육 의무화는 당연히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도 그런 아이들은 SW개발에 기본적인 자질이 있다고 생각되고, 뛰어난 개발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습니까.

SW개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논리적인 사고는 필수중의 필수입니다. 저도 직간접적으로 여러 사람들을 가르쳐봤고, 저희 마눌님은 한국썬 교육센터의 강사로 여러해 동안 일했었습니다. 교육을 해본 사람들은 압니다. 사람들 사이의 논리적 사고 능력의 편차는 대단히 큽니다. 경험적으로 볼 때 SW업계에서 능히 살아남고 발전할 수 있을만큼의 논리적 사고가 되는 사람은 전체의 절반은 커녕 2,30% 수준밖에 안됩니다. 나머지는 아무리 반복적으로 같은 내용을 가르쳐도 못따라옵니다.

혹시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당연히 어른보다는 훨씬 논리적인 사고를 하고 어른보다 습득이 빠르기까지 하니까 그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내 아이들이 아닌, 내 아이들의 친구들, 같은 반 아이들과 몇번이나 대화해보셨습니까. 아이들의 편차도 대단히 큽니다.

제 큰아들은 그림 그리기와 뭔가를 조립하는 일에 상당한 자질이 있습니다. 또 감성이 많이 발달해있고요. 반면 논리적인 사고에는 잼병입니다. 반대로 작은아들은 논리적인 사고가 저와 집사람을 찜쪄먹습니다. 감성이 필요한 그림 같은 건 영 아닙니다. 저는 조만간 작은 아들에게 SW 공부를 시켜볼까를 생각중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큰아들은 아닙니다.

자신의 아이들만 보고 모든 아이들에게 SW 조기교육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큰 오류입니다. 그래서 저는, SW조기교육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습니다만(저 자신도 중학교때부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습니다), 그것을 모든 아이들에게 강제화, 의무화하는 것은 결단코 반대합니다.

정리

저 저신이 오랜 현직 SW 개발자로서, SW에 어떤 식으로든 무게를 두겠다는 정책에는 기본적으로 찬성합니다. 하지만 SW에 예산을 붓고 정부가 힘을 쏟는다고 해서 무조건 SW업계와 SW개발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SW교육 의무화 정책은 SW시장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도 아닐 뿐더러, 개발자들에게도 해가 되고, 사회 전반적으로도 큰 부작용을 일으킬 일입니다.

5 comments for “초중고 SW 교육 의무화 반대, 두번째 이야기

  1. 2014.07.29 at 9:13 오전

    SI의 비중은 30%미만일겁니다. 국내 3조정도인데, 게임, DB, Embeded를 포함해 버리면 300조가 넘을거라는 추정치도 있습니다. 저도 컴공과 나왔지만, 저희 학부 졸업 취업생중 SI업계에서 일하는 비중은 매우 낮습니다.

    • 2014.07.29 at 6:49 오후

      현업에서 개발자를 몇분 정도나 만나보셨는지요?

    • 2014.08.04 at 11:59 오후

      저도 컴퓨터공학 졸업자이고, 졸업생 중 SI 비중은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전체 프로그래머 중에 SI 비중을 보면 컴퓨터공학 전공자는 정말 손에 꼽습니다.

      즉, SI 개발자가 컴퓨터공학 출신 숫자 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란 뜻입니다.

      SI 매출액의 경우 SI 3사 매출액만 합쳐도 10조가 넘습니다. 그런데 저 매출액은 표면적인 것이고(갑-을) 을-병-정 까지 내려가면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통계로 잡을 수 있는 수치가 아닙니다. SI 업계에 매여있는 솔루션이요? 그 솔루션 마저도 하청업체에 헐값에 아웃소싱 주고 사오는 형태입니다. 이런 매출은 솔루션이 아니라 SI 매출이라 봐야합니다.

      저는 박지훈 님의 의견에 100% 공감합니다. 저 역시 SI 대기업에서 근무하였지만 지적할 것은 지적해야지요.

      공개토론이 열린다면 저는 박지훈 님과 같은 논조에서 힘을 보태고 싶네요. (힘이 될 리는 만무하겠지만요 ㅋ)

  2. 2014.07.29 at 9:14 오전

    너무 어렵게 말씀드렸네요. DB(네이버), 게임(NC/넥슨), Embeded(삼성전자,LG전자)입니다.

  3. 김안젤라
    2014.08.27 at 1:38 오후

    네이버, 다음 블로그나 카페에 글퍼가기 기능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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