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측 증거 무시로 일관한 대법원의 증거능력 판단

지난해 11월 18일, 대법원은 임의제출로 디지털 증거를 압수했을 경우에도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판례를 내놓았습니다. 이 판례가 정경심 교수의 강사휴게실 PC들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얼마전 1월 27일, 대법원 제2부는 지난해 판례에 없던 새로운 전제조건을 달아 지난해 판례의 적용 대상 범위을 크게 좁히고 강사휴게실 PC들의 증거능력을 인정했습니다. 그 전제조건의 핵심은, 정 교수가 “3년 가까이” 실질적 점유를 하지 않고 동양대가 “현실적으로 지배, 관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022년 1월 27일 대법원 2021도11170 판결문에서 임의제출물 증거능력 인정의 핵심 사유

하지만 이런 판단을 내리기까지, 대법원2부 등 재판부들은 수많은 변호인측 주요 증거들을 줄줄이 무시했습니다. 그것은 전자정보의 점유권 문제 무시, 비정상종료 반박 증거 무시, 방어권 무력화 무시, “정경심 교수 것” 사실확인서와 증언 무시, 관리처분권 부인한 김 조교의 증언 무시, 임의제출 당시의 강압 사실 무시 등입니다. 하나씩 살펴보시지요.

매체 점유권만 판단하고 전자정보의 점유권 문제는 무시

2019-09-10 임의제출 직전의 PC1, PC2

IT전문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번 대법원 2부의 판단에서 가장 큰 문제는, PC라는 정보매체의 ‘관리처분권’만을 판단했을 뿐, 실질적인 증거로서 그 안에 담긴 전자정보의 관리처분권은 판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난해 11월 18일 대법원 전합 판례의 취지와도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해당 판례(2016도348)에서는, “정보저장매체와 그 안에 저장된 전자정보는 개념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별도의 독자적 가치와 효용을 지닌 것으로 상호 구별된다“라고 판시했습니다.따라서 동양대가 정보저장매체(해당 PC들)을 점유하고 있었느냐의 여부와 별개로, 그 안에 담긴 전자정보를 점유할 점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느냐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대법원의 판단대로 강사휴게실 PC들이 “공용PC로 사용하거나 임의처리할 것을 전제로 보관”된 것이라 해도, 그 안에 담긴 수많은 내밀한 개인정보들까지 ‘공용 사용 혹은 임의처리가 가능’하도록 위탁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중고로 휴대폰이나 PC를 매각했을 때 그 안에 담긴 내밀한 정보들도 함께 매각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많은 일반 사용자들은 초기화 혹은 포맷을 하면 데이터가 삭제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단순 삭제 혹은 포맷한 정도로는 얼마든지 기술적으로 복구가 가능하고, 매우 쉽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취지대로라면, 실제로 빈발하는 사건들임에도 중고 휴대폰에서 각종 내밀한 개인정보와 사진들을 추출하여 판매하거나 불법적 용도로 활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입다.

하지만 정 교수의 1심 판결에서는 “무체물인 전자정보의 소유나 점유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전자정보가 저장되어 있는 매체의 소유나 점유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라면서 디지털 정보의 독자적 가치를 부인하는 판결을 내렸고, 항소심에서도 1심 판단의 취지를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심지어 항소심에서는 추가로 2008년 대법원 판례를 추가로 인용했는데, 이 2008도1097 판례는 정보매체와 디지털 정보의 관계가 아니라, 전혀 엉뚱한 교도소 재소자의 “비망록”의 제출에 대한 것이어서 전혀 엉뚱한 판례 인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2부는, 이런 정보의 소유 주체 문제에 대한 판단을 회피함으로써 사실상 1, 2심의 판단을 인용했습니다. 앞서 11월 판례에서 매체와 정보의 독자적 가치를 명시했으므로, 그에 따라 대법원2부는 ‘전자정보의 소유/점유는 매체의 소유/점유를 기준으로 삼는다’라는 판단을 재검토했어야 마땅할 것임에도, 그런 검토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비정상종료라는 허위 주장을 그대로 인용

형사소송법 제106조 3항에서는, 압수 대상이 정보매체일 경우 선별압수를 하거나 복제하여 제출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이것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만 매체 자체를 압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같은 형소법 제219조의 명시적인 준용규정에 따라 임의제출물 압수에도 적용되는 것이 당연합니다만, 그간 검찰에서는 인정하지 않으려 해왔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판례(2016도348)에서는 아래와 같이, 형소법 제106조에 따라 임의제출물 압수의 경우에도 제219조의 선별압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2021-11-18 2016도348 판례에서 재확인한 디지털정보의 임의제출시 압수방법

검사측은 2019-09-10 강사휴게실 PC 임의제출 당시, 해당 PC들을 현장에서 선별압수(검색하여 사건과 유관 정보만을 복제하는 것)를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PC들을 통째로 가져갔습니다.

이에 대해 검사측은 해당 PC들이 비정상종료(‘뻑났다’)되었기 때문에, 형소법 제106조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검사측은 이 비정상종료 주장이 기술적 증거로 입증이 전혀 어렵지 않은 주장임에도 아무런 실질적 입증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변호인측 포렌식 분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임의제출 당시인 2019년 9월 10일 당시 강사휴게실 PC들이 비정상종료 된 사실이 없다는 점을 기술적으로 논쟁의 여지 없이 명백하게 입증했습니다. PC1의 경우 검사측 수사관들이 정상적으로 종료시킨 흔적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PC2의 경우는 당일엔 아예 부팅을 시도한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PC1`의 2019-09-10 날짜의 이벤트 로그에는 PC가 정상적으로 종료되는 절차의 모든 윈도우 이벤트가 하나도 빠짐 없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검사측 주장대로 당시 사용자인 검사측 수사관들이 들여다보고 있던 중에 비정상종료가 있었다면, 사용자가 종료를 시작하는 이벤트부터 나머지 모든 이벤트들이 단 하나도 기록되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2019-09-10 임의제출 직전 검사측이 PC1을 정상종료 시킨 이벤트 기록

(이런 흔적들에 비추어 전문가로서 추정되는 실질적 가능성은, PC1은 검사측 수사관이 켜보고 정상 종료했으며, PC2는 켜보려 전원을 넣는 순간 전원부가 터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입니다.)

항소심에서 변호인이 이같은 문제를 문제 삼자, 검사측은 현직 검사가 나서서 법정에서 재판부를 기망했는데, 기술문서들을 제시하는 너무도 천연덕스러운 주장에 법정에 있던 재판부와 방청객, 심지어 변호인까지 모두가 한꺼번에 속았습니다. 검사측은 해당 공판 이후 제출한 ‘검사 곽중욱’ 명의의 의견서에서도 같은 기망 수법의 허위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검사측이 법정에서 재판부를 기망한 자료 – MS사의 정보 페이지를 정반대로 해석하여 주장

당연하게도 제 전문가의견서에서 검사측 주장의 기술적 허위성을 조목조목 입증했습니다. 검사측은 기술 문서의 내용에 의도적으로 허위 번역을 제시하고, 문서 내용을 캡쳐 이미지를 편집 하여 다른 의미로 보이도록 하는 등,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각종 기망 기법들을 총망라한 점을 조목조목 지적했습니다.

PC들이 비정상종료되어 부득이 통째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변호인측 포렌식 증거에 의해 명백한 허위였고, 이는 명백한 형사소송법 106조 3항 위반이므로, 참여권 문제와 별개로 절차적 위법성의 이유로 강사휴게실 PC들의 증거능력을 부인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항소심 판결에서는 이 중요한 위법 압수의 문제를 전혀 판단하지 않았으며, 대법원 역시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참여권만 검토하고 방어권은 무시

강사휴게실 PC들의 임의제출은 피고인의 참여권 외에 방어권과도 중요한 관련이 있습니다. 방어권은 참여권과 함께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주요 권리들 중 하나입니다.

정경심 교수측은 1심 재판의 중반에 이르기까지 증거목록과 강사휴게실 PC들의 하드디스크 복사본 등 방어를 위해 결정적인 자료들을 전달받지 못해, 재판 초기 변론 전략에서 여러차례 혼선을 거듭했습니다. 게다가 검사측이 이를 문제 삼아 ‘정 교수의 주장들이 번복되고 있다’라며 수없이 공격함으로써, 정 교수측은 재판에서 2중의 불리함을 겪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형사소송법 제106조 3항의 압수의 원칙에 따라, 강사휴게실 PC들은 피고인인 정 교수측에서 보유한 채로 재판에 임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형소법 원칙대로 임의제출이 선별 압수 혹은 복제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정 교수와 변호인측은 강사휴게실 PC들의 원본을 보유한 채로 재판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검사측은 허위 주장을 통해 “불가피했다”라면서 해당 PC들을 통째 가져간 후에도, 해당 매체들에 대한 전체 이미지 복제를 완료하여 ‘돌려주지 않을 불가피함’은 없었음에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검사측은 이 PC들에 대해 몰수형까지 구형했습니다). 심지어는 복제본조차 재판부의 수차 지시 끝에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정 교수측에 전달했습니다.

이 기간 내내 정 교수와 변호인측은 해당 PC1과 PC2에 도대체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법정에서 검사측으로부터 일방적인 공격을 당했습니다. 2013년 이전의 일들로 2019년에 기소되었고, 한 두 가지 혐의도 아닌 십여 가지 혐의로 동시 기소된 상황이므로 기억을 되살려줄 자료 없이는 상당부분의 기억이 부정확하거나 모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구속상태이기까지 했습니다.

검사측은 정 교수의 소유인 디지털 정보들을 임의제출 형식으로 압수하여 독점한 채로, 재판의 무기로 꺼내들고 그 무기가 무엇무엇인지도 모르는 정 교수측을 난타한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공정한 재판일 수가 있겠습니까.

형소법 제106조 3항에서 압수의 수단으로 1 선별압수, 2 매체 복제 방법을 우선적으로 제시하고 현저히 불가피한 경우에만 매체 자체 압수를 허용한 취지는, 단지 과잉 압수를 최대한 방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방어권을 배려하는 차원도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1, 2, 3심 법원은 공히 이런 형소법 제106조 3항의 취지를 일체 무시하고 심각하게 침해된 방어권 문제를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정경심 교수 것” 사실확인서와 증언 무시

대법원2부는 2016년말부터 “3년 가까이” 강사휴게실 PC들이 방치되어 있었다고 판시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2부는(1, 2심도) 이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사실확인서의 내용을 전면 무시했습니다.

임의제출자 김 모 조교의 전전임 조교인 2017년 당시 교양학부 조교는, 1심 재판과정에서 해당 PC들을 강사휴게실에서 봤었던 기억을 사실확인서로 제출했습니다. 2017년 당시에 해당 PC들에는 “정경심 교수 것”이라고 쓰인 A4지가 붙어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종이가 어느 사이에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이는 동료 교수인 장경욱 교수 역시 동일한 내용을 법정에서 증언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kyongook.jang.7/posts/805132024215384)

위 사실확인서를 제출한 조교는 2015~2017년 사이 근무했고, 2018년에는 다른 조교가, 그리고 2019년 3월부터는 임의제출자인 김 모 조교가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2018년 조교는 전임 조교로부터 업무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고, 게다가 2018년은 정 교수가 연구년으로, 해당 2018년 조교는 PC들이 누구 것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2018년 조교로부터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를 받은 임의제출자 김 모 조교 역시 해당 PC들이 누구 소유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즉 임의제출자 김 모 조교가 PC들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모르게 된 것은 붙어있던 “정경심 교수 것” 종이가 어느 새 떨어진 ‘사고’의 결과일 뿐, 정 교수는 강사휴게실에 가져다놓은 PC들이 본인 소유임을 분명하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1, 2, 3심은 이같은 “정경심 교수 것” 사실확인서와 법정 증언을 일관되게 무시하고, 정반대로 김 모 조교가 보관, 관리의 업무를 맡아 “관리처분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런 “관리처분권” 판단은 동양대의 실제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것으로, 해당 교양학부 강사휴게실에는 정 교수의 물품 외에도 다른 교수들의 물건들도 많이 쌓여있었습니다. (동료 교수인 장경욱 교수의 물건들도 여전히 보관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법원의 일관된 판단대로라면, 이런 교수들의 물품들 중 교양학부 조교가 누구 것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물건들은 모두 동양대 소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동양대 교수들은 물론이고 임의제출자인 김 모 조교 본인도 법정 증언으로 명확하게 부인한 일입니다.

관리처분권 부인한 김 조교의 증언 무시

게다가, 김 조교의 법정 증언은 이같은 대법원의 판단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김 조교는 ‘누군가 되찾으러 올 물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 않느냐’라는 검사측의 질문에, 질문이 의도하는 취지와 반대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라며, 소유자가 나타나면 돌려줬을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또 ‘학교에 반납하려 했던 거 아니냐’라는 재질문에도, 실제 반납을 하려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답도 했습니다.)

김 모 조교의 정 교수 1차 공판 법정 증언 내용 (2020-03-25)

즉 김 조교는 해당 PC들을 누군가 “전임자”의 물건이라고 잘못 알고 있기는 했지만, 소유자가 찾으러 오면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있었고, 자신이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가 없다는 취지의 진술을 명확하게 했습니다. 동양대의 ‘관리처분권’을 인정한 대법원2부의 판단은 이런 법정 증언 내용을 무시한 것입니다.

덧붙여, 김 조교와 함께 임의제출자이기도 한 행정지원처장은, 직급으로 보면 김 조교보다 상급자이기는 하지만 김 조교의 직무상 지휘자가 아닙니다. 김 조교의 업무는 대학본부와 무관하며 교양학부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동양대의 관리 대상도 아닌 PC들에 대한 행정지원처장 정 모씨의 생각은 무의미하고, 더욱이 교양학부에서 발견된 물건에 대한 임의제출의 당사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스스로 강사휴게실이라는 공간과 학교측로부터 주어진 물품만을 관리하는 것이 직무인 김 조교에게, 주인을 알 수 없는 물건은 스스로의 판단으로도 직무상 관리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설사 대법원 판단의 취지를 인정한다고 해도, 해당 PC들의 관리처분권자는 김 모 조교 개인이지 동양대 학교측이 될 수 없습니다. ‘직원이 회사에서 주은 물건은 회사 것’이라는 식의 괴이한 논리 비약이고, 그 과정에서 원 소유자의 권리는 완전히 몰각시키는 이상한 판단입니다.

임의제출 당시의 강압 사실 무시

나아가서, 임의제출자 김 모 조교는 두 차례의 증인 출석을 통해 임의제출 당시 검사측이 불러주는 대로 진술서를 쓰고 심지어 제출 과정에 강압이 있었음을 증언했습니다.

첫 증인 출석 당시, 김 조교는 인수인계 당시의 상황에 대한 검사측 질문에 “저 때 불러주신대로”라며 의미심장한 단서를 흘렸습니다. 이를 놓치지 않은 변호인이 ‘누군가 불러준 것이냐’라고 묻자, 봇물 터진 것처럼 전혀 새로운 내용을 증언했습니다. “검사님”이 진술서 내용을 불러주는 대로 썼고, 자신은 ‘아 다르고 어 다른 거 아니냐’ 라며 이의를 제기했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이 중요 증인 김 조교는 확인 취재에 들어간 유튜버 빨간아재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습니다. 검사가 진술서 내용을 불러주고 자신이 이의를 제기한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니라, 함께 자리에 있던 동양대 행정지원처장을 향해 “얘 징계 줘야 되겠네. 관리자가 관리도 못 하고” 라는 등등의 강압을 행사했던 것입니다. 이 일로 김 조교는 2020-07-02에 2차로 증인 출석하여 인터뷰 내용을 법정에서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김 조교는 재차 출석한 법정에서 그 말을 듣고 “나 이러다가 진짜 장계 받겠구나 해서 불러주는 대로 썼다“라고 진술했습니다. 또 검사가 김 조교에게 “그게 가지고 있는 거야, 네가 관리하고 강사휴게실에 있으니까” 라고 강요하고, 그에 대해 “좀 무섭다, 나한테 문제가 생길 것 같다” 라고까지 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더불어 “즉시 반납을 했어야 했는데 잊고 반납하지 않았다”는 진술서 내용도 검사가 시켜서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검찰에서 진술조서 작성 당시에도 검사에게 강압 사실을 알렸는데, “에이 그거 장난이잖아요, 왜 그래요” 하며 묵살한 사실도 밝혔습니다.

온통 강압과 회유 투성이인데, 이쯤 되면 임의제출 당시의 진술서와 한 달 후 참고인 진술조서의 내용은 총체적으로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상식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사측으로부터 “징계 줘야겠다”는 발언이 있었던 것은 인정하면서도, 김 조교가 해고 등의 두려움을 느껴 진술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1심 재판부는 법정에서 직접 청취한 증인의 증언을 무시하고 검찰 진술조서만을 신뢰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는 법관이 수사 서류보다 법정 증거와 증언에 따라 심증을 형성해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일입니다.

대법원은 2003년부터 일관되게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해왔는데, 바로 그 대법원이 1, 2심에서 공판중심주의에 역행하는 판단을 내린 것을 보고도 그 판결들을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스스로의 공판중심주의 기조에 뒷걸음을 친 것입니다.

나아가서, 대법원 2부는 임의제출자에 대한 검찰의 강압 정황을 법정에서 듣고도 판결에서 희한한 논리로 묵살해버린 1, 2심 판단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1, 2심은 검사의 강압이 있었던 사실 자체는 인정했습니다. 그런데도 9개월간의 대학 조교 경험이 사회경험의 전부인 20대 여성이, 현직 검사들의 강압을 ‘강압으로 받아들였을 리가 없다’는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판단을 한 것입니다.

나아가서, 강사휴게실 PC들의 증거능력이 문제가 되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참여권 등의 문제들뿐만이 아닙니다. 다음 글에서는 바로 이 강사휴게실 PC들의 ‘원본 동일성’ 문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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