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동일성 주요판례를 무력화한 항소심을 인용한 대법원

앞서 포스트에서, 검사측이 강사휴게실 PC들의 원본 동일성과 무결성을 크게 훼손했으며, 이는 증거능력 불인정으로 이어져야 할 문제라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또 이어서 이 원본 동일성 문제가 단순한 원칙론이나 추상적 의심의 차원이 아니라, 증거 변조에 대한 합리적 의심 정황들도 여럿 있다는 점도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항소심과 상고심 재판부로서는 이런 원본 동일성 문제에 대한 엄격한 판단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런데도 두 재판부는 이런 심각한 증거능력 문제를 사실상 완전히 무시하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판결문들을 분석해보니, ‘놀라운 비결’이 있었습니다.

원본 동일성, 무결성에 대한 항소심과 상고심의 판단

아래는 강사휴게실 PC들의 원본 동일성, 무결성에 대한 대법원2부의 판단 부분의 전문입니다(2021도11170). 해당 부분 전체가 이렇게 짧은 데서부터 알아챌 수 있듯이, 구체적 설명도 없이 항소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는 선언이 전부입니다.

대법 판결, “항소심은 원본 동일성, 무결성 법리를 오해하지 않았다”

그러면 항소심 판결문이 얼마나 ‘명판결’이었길래, 실질적 설명도 전혀 없이 항소심 판단에는 잘못이 없다는 선언만 했을까요? 아래는 위와 같이 대법원2부 판결에서 법리 오해 없고 적법하다고 판단한, 항소심 판결문의 원본 동일성 관련 판단입니다.

항소심 판결의 원본 동일성 판단: 검사측 입증이 없는데도 원본 동일성, 무결성 인정

그럼 이제부터 대법원2부가 적법하다 판단한 항소심 판결에 과연 잘못이 없었는지 하나 하나 살펴봅시다.

직전 중요 판례를 자의적으로 무시한 항소심 판결

원본 동일성 관련으로 가장 최근의 중요 판결은, 2018년 2월 8일 선고된 ‘2017도13263‘ 판결입니다. 이 판례 전체를 살펴보기보다, 이해하기 쉽게 이 판례를 풀어놓은 요약문 격인 판결 보도자료를 살펴봅시다. 해당 보도자료를 보면, 대법원은 해당 판결의 주요 의의로서 가장 먼저 아래와 같이 제시했습니다.

2018. 2. 8. 선고 2017도13263 판결 보도자료

요컨대, 이 2018년 대법원 판례에서 원본 동일성에 대한 판결 의의의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원본 동일성은 검사에게 증명의 책임이 있다.
  2. 원본 동일성 증명은 자유로운 증명으로 족하다.
  3. 하지만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로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이 2018년 판례의 원본 동일성 요점 부분을 위 항소심 판결의 법리 설명과 비교해보면, 항소심 판결문에는 ① ‘검사에게 증명 책임이 있다’, ② ‘자유로운 증명으로 족하다’ 부분만 있을 뿐, ③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로 증명해야”라는 중요 조건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즉 정 교수의 항소심 재판부는 원본 동일성 관련 판단의 법리로서 이전 대법원 판례들을 인용하면서도, “합리적 의심 배제” 요건은 빼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항소심 판결문의 법리 설명에서 각각 표시되어 있다시피, ①과 ② 법리는 2018년 판례 이전의 판례들에서 이미 정립된 법리입니다. 따라서 2018년 판례의 핵심적 의의는 ③ “합리적 의심 배제할 정도로 증명” 요건에 있습니다. 실제로 위 2018년 판례의 보도자료에서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 부분에 다른 부분보다 더 강조한다는 의미로 파란색 밑줄이 쳐져 있음도 볼 수 있습니다(제가 밑줄을 친 것이 아니라 해당 보도자료 자체 그대로입니다). 이 부분이 해당 판례의 가장 핵심적 의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 교수 항소심 판결은 이 ③번 요건을 법리 검토에서 배제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항소심 재판부는 원본 동일성 관련 최근 가장 중요한 판례인 2018년 판례를 전면 무시한 결과가 된 것입니다. 항소심 판결이 최근의 대법원 주요 판례의 법리를 무시한 것이므로, 이 항소심 판결문의 이 원본 동일성 관련 판단은 위법한 판단인 것입니다.

2018년 판례 무시의 효과

이렇게 2018년 판례에서 3번의 “합리적 의심 배제” 요건을 빼버리고 2번의 “자유로운 증명으로 족하다” 요건만 남김으로써, 결과적으로 항소심 재판부는 원본 동일성 입증 문제를 아무런 제한 조건 없이 법관이 자유롭게 판단해도 되도록 현행의 법리를 자의적으로 바꾼 셈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합리적 의심 배제” 요건을 누락시키고 의무적 조건이 없는 “자유로운 증명”만으로 둔갑시킴으로써, 항소심은 검사측이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증명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유심증’만으로 원본 동일성을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위 항소심 판결문에서 법리 설명에 뒤이은 구체적 판단 내용을 보면, 임의제출을 받기 전에 임의로 해당 PC들을 열어보고, 제출(예정)자 모르게 USB를 삽입하여 모종의 작업을 한 것에 대해, 항소심은 “선별압수 목적에 불과”하고 “수정, 변경되었다고 볼 자료가 없다”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판단과 관련, 실제로는 검사측은 전혀 아무런 증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검사측은 법정 변론에서 “선별압수 목적이었다”라고 말로만 주장한 것이 전부였고, 두 달 후 제출한 관련 검사 의견서에서조차 최소한의 입증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다못해, 같은 것이라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같은 모델의 USB에 선별압수 관련 프로그램들을 담아 ‘이런 거였다’라며 무작정 던져보는 시도조차 없었습니다.)

대전제인 법리 설명에서 2018년 대법 판례대로 “합리적 의심을 배제” 요건이 있었다면, 검사측의 증명이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원본 동일성과 무결성이 훼손되지 않았다”는 이런 판단을 하는 것은 법리상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변호인측이 원본 동일성의 요건으로 피고인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객관적인 제3자의 참관이 있어야만 원본 동일성이 증명된다고 한 주장에 대해서도, 항소심 재판부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와 같이 볼 근거가 없다”라고 단정했습니다. 이는 원본 동일성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마저도 전면 무시하는 판단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 포스트의 후반에서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항소심 내내 검사측은 원본 동일성 문제에 대해 반대의견 개진 시도조차 못했었습니다. 제가 제출한 다른 대부분의 쟁점들에 대해서는 다소 늦더라도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던 것과 달리, 원본 동일성 주제의 전문가 의견서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대 의견을 내놓지도 않았습니다. 변호인측의 공격에 최소한의 방어 시늉조차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판단에 앞서 법리 검토 부분에서 자의적으로 “합리적 의심 배제” 요건을 배제해버림으로써, 아무런 합리적 근거 없이 오직 ‘법관의 자유심증’만으로 원본 동일성이 입증이 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게 모두 항소심 재판부가 “자유로운 증명으로 족하다”라며 대법 판례의 법리의 편리한 절반만 인용함으로써, 2018년 대법 판례라는 족쇄를 스스로 셀프 해제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항소심 판결의 법리 무시를 못본 체한 상고심 판결

항소심 판결이 이렇게 원본 동일성 관련 가장 중요한 판례의 취지를 정면으로 뒤집는 판결을 내놓았으므로, 기존 판례를 정립했던 주체인 대법원이 파기환송 처분으로 이를 바로잡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법원2부는 이런 항소심 판결의 중대한 문제를 무시하고, 항소심의 판단이 정당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판단 자체는 원본 동일성과 무결성에 대한 원론과 실무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므로(이전 포스트 참조), IT전문가의 입장에서 기가 막힐 정도로 부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말입니다. 판결 내용상의 심각한 부당성과 별개로, 일단 제도상으로는 대법원에겐 그럴 권한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대법원2부의 이런 판단은 결과적으로 이전 중요 판례와 달리 항소심의 전혀 새로운 판단을 인정한 것이므로, 당연히 구체적으로 ‘새 법리‘에 대한 설명을 했어야 할 것입니다. ‘합리적 의심 배제할 정도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 라고요.

그런데 대법원2부는 그런 새 법리 설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의 직전 중요 판례를 중대하게 무시했는데도, 그에 대해 아무런 실질적 검토도 없이 그냥 항소심 판단이 옳았다고만 판시했습니다.

요컨대 대법원2부는 새 판례를 만든 것도 아니면서, 기존 주요 판례를 무력화한 항소심의 판단을 그대로 적법하다 인정한 것입니다. 이런 형태의 판결이 사법제도상 가능한 것인지 혹은 허용될 수 있는 것인지는 법률 비전문가인 저로서는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겠습니다만.

그런데, 이런 식이면, 아무런 법리 설명이 없기 때문에 판례가 바뀌었다고 할 수도 없겠고, 결국 대법원2부의 판결은 오직 정경심 한 사람만을 유죄 처분하기 위한 ‘특별 케이스’ 판결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018년의 대법원2부, 2022년의 대법원2부

게다가, 2018년 판례를 남긴 재판부 역시 이번 판결과 동일한 ‘대법원2부’였습니다. 즉, 현재의 천대엽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대법원2부는, 직전의 권순일 대법관 주심의 대법원2부의 주요 판례의 법리를 중대하게 무시하고도, 실질적인 새 판례로 정립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더욱 기막힌 사실은, 2018년 판례 당시의 대법원2부와 이번 판결을 내린 대법원2부의 구성원을 비교해보면, 다른 대법관들은 모두 바뀌었지만 단 한 사람만은 그대로 있습니다. 조재연 대법관입니다.

그런데 이번 판결문의 말미에는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즉 2018년 판례에 참여한 조 대법관조차도 당시 판례를 무시한 이번 판결에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USB 삽입은 선별압수 목적이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

항소심 판결문의 세부 내용을 봐도 황당한 부분들로 가득합니다.

외부저장매체를 USB로 강사휴게실 PC 1호에 삽입한 사실, 그런데 이는 선별 압수를 시도하기 위해 포렌식 도구가 담긴 저장장치를 연결하려 했던 것에 불과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이후 강사휴게실 PC 1호에 저장된 전자정보가 수정, 변경되었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는 점을 더해 보면, 위와 같은 저장매체 삽입 사실만으로 강사휴게실 PC 1호에 저장된 전자정보의 원본 동일성과 무결성이 훼손되었다고 볼 수 없다.

정경심 교수 항소심 판결문 중

수차 강조하다시피, 원본 동일성과 무결성의 입증은 검사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이 USB 삽입 사실을 변호인측이 문제 삼은 것은 원본 동일성과 무결성의 훼손 문제입니다. 따라서 검사측이 실질적으로 USB 삽입의 목적이 단지 “선별 압수” 목적이었고 그 외 다른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애초에 영장도 없고 임의제출도 받기 전 상황에서 몰래 USB 장치를 삽입한 자체가 명백하게 위법한 행위였지만, 검사측이 어떤 이유로라도 불가피하게 몰래 그럴 사유가 있었다면, 변조의 목적이 아니었고 선별 압수 시도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겼어야 했습니다. 검사측 수사관들에겐 아주 쉬운 방법도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서 멍하니 대기하고 있던 김 모 조교에게 의의를 설명하고 지켜봐달라며 ‘참관’을 요청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그랬더라면 위법한 ‘선별압수’ 시도를 한 자체가 재판 초기부터 문제가 되었겠지요.)

그런데 검사측은 “선별 압수를 위한 것이었다”라는 말 외에, 어떤 실질적인 입증도 하지 않았습니다. 입증하려는 최소한의 시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인정할 수 있다”라니, 말만 내놓으면 다 인정할 것이면 재판은 왜 하는 것인지 근본적인 회의가 드는 지점입니다. 항소심이 이렇게 아무런 근거도 내놓지 않은 말만의 주장까지도 자유심증만으로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이, 위에서 살펴본 2018년 판례 무시의 결과입니다.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배제해야 한다”는 법리를 항소심이 묵살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의 “PC1의 정보가 수정, 변경되었다고 볼 자료가 없다“는 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서술은, 원본 동일성과 무결성의 개념을 송두리째 몰각하는 기막힌 선언입니다. 증거 변조가 있다고 볼 자료가 있어야 원본 동일성을 따져볼 가치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증거 변조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것이 원본 동일성의 목적입니다. 디지털 증거는 변조가 매우 쉽고 변조 후 적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사전 차단을 위해 원본 동일성을 중시하는 것인데, 항소심 재판부는 거꾸로 뒤집어 ‘변조됐다는 근거가 없으니 원본 동일성 훼손이 없었다’라는 기괴한 논리를 창안해낸 것입니다.

요컨대, 항소심 재판부는 원본 동일성 법리의 기본 개념과 의의를 다 뒤집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황당무계한 판단을 대법원2부가 “항소심의 원본 동일성과 무결성 판단에 법리 오해가 없다” 라며 그대로 인용해버렸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입니까?

‘참관이 필요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

디지털 증거의 채증 현장에서 참관의 필요성에 대해 “그렇게 볼 근거가 없다”라고 단정한 항소심 재판부의 선언과 달리, 이런 원본 동일성과 무결성 문제는 포렌식 실무자, 정보법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그 개념과 절차에 있어 혼란이나 논쟁의 여지가 없고, 원본 동일성과 무결성 보장을 위해 참관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견이 없습니다.

잠깐만 검색해보더라도 같은 취지의 많은 논문들이 나오지만,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연구소 이인수 소장의 “디지털증거 확보체계” 논문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 보다시피 이 논문에서도, ‘현장 복제’ 및 ‘매체 압수’ 어느 경우든 공히 참관이 필요함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대검 디지털포렌식연구소는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의 기술 연구개발과 포렌식 전문 수사관에 대한 교육훈련 지원 등, 검찰청의 디지털 포렌식 기술 관련 핵심 브레인 역할을 맡고 있는 기관입니다.)

3.1. 현장에서의 조치 및 디지털증거 확보
디지털정보의 압수는 출력 또는 복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복제의 경우, 현장에서 사건 관련성 정보(유관 정보)를 선별한 후, 원본 디지털정보와 사본 디지털정보를 대상으로 암호학적 해시함수로 각각의 해시값을 계산하고 상호 비교한 후, 원본동일성 검증을 거쳐 해당 해시값이 기록된 확인서에 참관인의 서명을 받은 후, 압수된 전자정보의 상세목록을 교부한다. 예외적으로 원본 저장매체를 압수한 경우에는 저장매체를 봉인하고 압수목록을 교부하며, 디지털포렌식 업무담당부서로 이송하여 이해 당사자의 참관 하에 봉인을 해제하고 유관정보를 선별 추출하는 복제를 통한 전자정보 압수 절차를 따른다.
(중략)
또한 디지털 정보는 변조가 용이한 특성으로 압수시점부터의 변개, 조작 등의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따라서 봉인 또는 해시값을 받는 것은 디지털증거의 증거능력 유지의 시작점이고 가장 중요한 절차 중 하나이다. 참관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저장매체의 봉인해제, 재봉인 과정 등을 녹화하거나 사진 촬영 등을 통해 기록을 남겨 두고 있다.

출처: “디지털증거 확보체계” (이인수, 2016.10, 정보보호학회지 제26권 제5호)

이 논문에서 한 가지 더 특기할 만한 것은, 이 논문이 발표된 것은 2016년으로서 당시는 임의제출물 압수에 대한 판례상 법리가 확립되기 전이지만, 영장 압수와 임의제출 압수를 구분하지 않고 “디지털 정보의 압수”의 경우로 통칭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매우 당연한 일로, 원본 동일성과 무결성 확보의 필요성은 증거물 획득의 방법이 무엇이냐와 무관하게 디지털 정보라는 본연의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아래는 포렌식 관련으로 인용 횟수가 높은 논문 “전자정보의 압수수색절차에서 관련성·동일성·참여권“(2018년, 조광훈, 법제논단)입니다. (조광훈 박사는 현재 서울북부지검 사무관이기도 한데, 북부지검은 2017년 대검에서 지정한 ‘디지털 포렌식 거점청’입니다.) 보다시피 정보매체를 압수한 경우 피압수자의 참여권을 보장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증거능력이 배제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 해당사건과 관련성이 있는 정보와 관련성이 없는 정보를 함께 압수한 경우
압수수색현장에서 범죄사실과 관련성 있는 전자정보와 관련성 없는 전자정보가 구별되지 않고 혼합되어 압수수색을 하였거나(즉 선별적 압수수색이 아닐 경우), 선별적 압수수색이 불가능하여 정보저장매체(원본매체)를 압수한 경우에는 압수수색의 종료시점은 늦춰진다. 수사기관이 현장에서 복제하거나 출력한 자료를 외부로 옮겨 수사기관의 사무실에서 다시 2차적으로 해당 범죄사실과 관련성 있는 전자정보를 선별하기 위하여 탐색하거나 복제하거나 선별한 후 이를 출력할 때까지 압수수색은 계속되는 것으로 본다. 이때까지도 피압수자의 참여권도 보장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은 즉 적법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결과 전자정보에 대한 증거능력이 배제될 수가 있을 것이다.

출처: “전자정보의 압수수색절차에서 관련성·동일성·참여권”(2018년, 조광훈, 법제논단)

많은 논문들 중에서 위 두 건을 소개한 이유는, 이 논문들이 이 참관 문제 뿐만 아니라 디지털 증거에 대한 수사 방법에 대해 탁월하게 잘 정리한 좋은 논문들이어서입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두 논문 모두 검찰청의 전문가들의 논문입니다. 앞서 소개한 이인수 소장은 대검의 포렌식 기술을 주도하는 대검 디지털포렌식연구소의 소장이며, 후자인 조광훈 박사는 대검 지정 포렌식 거점청인 서울북부지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검찰청 최고의 전문가들조차도 참관의 필요성에 대해 변호인측과 이견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제 원본 동일성 관련 의견서에 대해 검사측이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과연 “그와 같이 볼 근거가 없다”라는 항소심 재판부의 호기로운 단언이야말로, 과연 그렇게 볼 근거가 있는 것입니까?

압수수색 참여권과 디지털 증거 참관은 별개의 법리

위 조광훈 박사의 논문에서 보다시피, ‘정보저장 매체 압수’의 경우에는 ‘압수수색의 종료 시점’이 매체 압수 당일만이 아니라 탐색, 복제, 선별, 출력 시점까지 연장됩니다. 이는 2015년 7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례 ‘2011모1839’에서 확립된 법리인데요. 매체 자체를 압수한 경우에는, 압색 현장이 아닌 수사기관에서 매체를 뒤져보는 과정도 압수수색의 과정에 포함되기 때문에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합리적인 판단으로서, 실질적인 증거는 매체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전자정보, 즉 파일 등이기 때문에, 실질적 증거 파일을 찾아보는 과정은 당연히 ‘수색’의 연장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매체와 정보는 개념적으로 실질적으로 별개의 존재이고 각각의 소유권, 점유권도 역시 별개이기 때문에, 특히 매체를 제3자가 보관중이던 경우 매체를 압수했다고 해서 그 안의 정보에 대한 압수가 적법하게 종료되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수사중인 혐의 관련 ‘유관정보’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해당 판례의 이런 판단 자체는 법리적으로 매우 합리적인 것으로 매우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이로 인해 윈본 동일성의 개념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법조계 관계자들에게는 심각한 ‘오인’이 발생할 여지가 높아진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서 포스트에서 강조했다시피, 법리상 원본 동일성과 무결성 증명은 ‘검사의 의무’이며, 여러 판례들의 선언에서도 이런 취지는 일관됩니다. 따라서 동일성 보장 절차의 필수 요소인 참관 역시 검사의 의무입니다(참관을 영상 녹화로 대체하는 경우 등을 포함). 그런데 보다시피 위 판례에서 강조된 것은 ‘참여권’, 즉 ‘피의자의 권리’입니다. ‘권리’라고 강조하는 것이 뭔가 피의자측을 배려하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권리라는 것은 스스로 행사하지 않으면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참여권 혹은 참관 문제가 ‘검사의 의무’와 ‘피의자의 권리’로 모순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 외견상 모순의 근본 원인은 압수수색의 참여권 문제와 디지털 증거의 참관 문제는 서로 다른 법리이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법상 압수수색에서의 참여권은 주로 과잉압수 방지를 위해 마련된 조항인 반면, 디지털 증거의 참관은 검사측의 증거능력 보장을 위한 것으로, 그 법리의 필요성의 출발점부터 다릅니다. 또한 피의자, 피고인측만이 참여하는 압수수색의 참여권 문제와 달리, 디지털 증거의 참관은 반드시 피의자측일 필요가 없고 객관적인 제3자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또 한 가지, 두 법리는 적용 범위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형소법상의 참여권은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이라는 절차에만 해당될 수 있고 임의제출에 대해서는 적용하기 어려운 반면, 디지털 증거의 참관 문제는 증거 본연의 증거능력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정보매체를 입수한 경로가 영장 압수나 임의제출 압수 어느쪽이든 공히 항상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를 표로 정리해보자면 이렇습니다.

형소법상 압수 참여권디지털 증거의 참관
기본 취지피의자의 권리검사의 의무
목적과잉압수 방지검사측 증거능력 입증
참여 주체피의자측객관적 인물
적용 범위영장 압수에만 적용입수 방법 무관, 항상 적용

물론 매체가 압수된 경우 검사측 사무실에서 피고인측이 채증 과정을 참관하면 피고인의 권리와 검사측의 의무 두 가지 문제를 모두 한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가 한번의 참관으로 해결할 수 있는 편리한 방법이 있다고 해도, 한번의 절차로 두 가지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뿐이지 이 두 가지는 법리적 취지와 현실 절차에서 엄연히 별개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이렇게, 형사소송법상 참여권의 범위를 강조하자 검사의 의무인 참관이 피압수자가 행사할 권리로 오인될 심각한 가능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실제 판례들을 살펴보면 이런 오인이 판결에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검사측이 이런 오인 여지를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디지털 증거의 참관 문제를 형소법상 참여권으로 몰아가는 경향도 있어보입니다. 재판에서 ‘피고인측이 스스로 참여를 포기했다’라는 이유를 들어 전혀 별개인 원본 동일성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원본 동일성과 무결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는 법관들로서는 이런 기만적 논리에 넘어가기가 매우 쉬울 것입니다.

결어

앞서 판결문들을 살펴봤다시피, 정 교수의 항소심, 상고심 재판부는 강사휴게실 PC들의 원본 동일성, 무결성 문제를 제대로 눈여겨 보지도 않았습니다. 원본 동일성은 검사가 입증해야 한다는 법리가 확고한데도 어떤 방법으로도 전혀 증명하지 않은 검사측의 말뿐의 주장을 하해와 같은 아량으로 그대로 인용하고, 반대로 명확한 법리에 따른 변호인측의 원본 동일성 문제 제기는 “그렇게 볼 근거가 없다”라는 말로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심지어 검사측의 증거 변조를 의심할 합리적 정황들이 여럿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나라 사법제도가 채택한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재판에서의 사실 판단은 법관의 자유심증에 맡겨져 있지만, 법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법관이 잘못 판단하는 것은 자유심증주의에 따른 법관의 재량 범위가 아닙니다. 이런 ‘법리 오인으로 인한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판결‘로서 위법한 판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원본 동일성에 대한 법리 오인, 자유심증주의의 한계 일탈이 정경심 교수의 항소심, 상고심 판결에서 연거푸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원본 동일성 문제 외에도, 허위 증거를 유죄 판단 근거로 채택하고 변호인측 포렌식 증거들을 일괄 검토하지 않겠다 선언한 부분 역시도 자유심증주의의 한계 일탈에 해당합니다.)

저는 법률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 현업에서 법조와 관련 있는 경력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비록 비전문가이기는 해도 제가 직접 발견한 증거들이 판결에서는 대부분 무시된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워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관련 판례들과 논문들을 찾아 많은 노력을 들여 깊이 검토했습니다.

만약 단지 제가 비전문가라는 이유로 살펴볼 최소한의 가치도 없이 무시할 의견이라 여긴다면, 일반 국민들의 사법제도 이해를 넓히기 위한 사법부의 오랜 노력은 한낱 허울만의 위선이 될 것입니다. 설사 확정판결이라고 해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2 comments for “원본동일성 주요판례를 무력화한 항소심을 인용한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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