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phi/C++Builder가 많이 사용되는 분야는?

2000년대 초반부터 Delphi와 C++Builder의 점유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꽤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직접적인 원인은 자바의 빠른 성장 때문이었는데요. 하지만 점유율이 떨어졌어도 Delphi와 C++Builder가 실질적으로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IT 업계 전체가 크게 성장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는 해도, 자바가 이전에는 Delphi가 차지하고 있던 영역을 많이 가져간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흔히 SI 개발이라고 말하는 ‘업무 개발’ 영역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패키지, 솔루션 업계에서는 오히려 점유율이 점점 더 올라가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업계의 기형적인 특성상 아무래도 전체 개발자 수 면에서는 업무 개발 쪽이 패키지/솔루션 쪽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점유율이 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자바가 업무 개발의 대세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전체 업무 개발의 시장 상황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특별한’ 기능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일반적인 업무 개발’에서는 자바가 확실한 대세임에 틀림없습니다만, 거꾸로 말하면, ‘특별한’ 기능이 필요한 경우에 대해서는 자바와 델파이의 시장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는 ‘특별한’ 기능이란, 물론 자바와 같은 웹 개발 방식으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델파이/C++ 등의 네이티브 개발환경의 장점이 부각되는 기능들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실시간 통신, 풍부한 UI, 강력한 저수준 제어, 높은 성능 등입니다. 이런 기능들이 부각되는 경우는 아주 많지만, 몇가지만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금융권. 금융권의 경우 델파이의 사용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물론 자바도 많이 사용되기는 하지만, 핵심 업무 영역에서는 델파이가 더 많이 사용됩니다. 금융권의 기간 업무에서는 실시간성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능도 중요하고 풍부한 UI도 필요합니다. 그러면서도 비주얼 C++과 같이 생산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개발환경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개발 분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금융권에서 델파이가 많이 사용됩니다. ‘은행의 은행’인 한국은행도 델파이를 주력으로 사용하며, 시중 은행들 중 여러 군데에서 델파이를 사용합니다. 또 증권사, 생보/손보 등 보험사, 카드사, 펀드 운용사 등에서는 델파이가 아주 지배적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곳만 수십군데가 델파이를 지배적으로 사용합니다. 증권 투자에서 많은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HTS 프로그램들도 절반 정도는 델파이로 만들어졌습니다. C++빌더도 적지 않게 사용됩니다.

통신업계
. 통신사에서는 네트워크 관리를 위해 델파이를 많이 사용하며, 또한 빌링(요금 고지 업무) 업무에서도 많이 사용합니다. 시내/외 전화, 휴대폰, 인터넷 등 통신사의 총 가입자수를 다 합하면 우리나라 국민 수의 3~4배가 될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통신사의 빌링 업무는 매월 어마어마한 분량의 고지서를 만들어내게 되고, 그만큼 성능 높고 저수준 제어가 가능하며 동시에 생산성도 높은 개발툴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국내 주요 대형 통신사들은 거의 다 델파이를 수백 카피씩 주력 개발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병원 등 의료 업계. 병원도 저수준 제어가 많이 필요하며 동시에 성능과 성능도 중요합니다. 병원은 각종 의료 장비들과 연동하는 것이 필수적이니 장비 제어가 용이한 델파이나 C++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또 X레이 사진이나 CT 화면 등 영상 제어도 역시 중요한데, 이런 업무를 성능이 떨어지는 웹 환경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국내 최고의 병원 1, 2, 3위를 모두 포함해서, 국내 대부분의 대형 병원들이 델파이와 C++빌더를 주력 개발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장비 및 FA 업계. 당연히 웹 개발을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C++ 아니면 델파이 뿐인데, C++빌더와 델파이가 경쟁 툴인 비주얼 C++과 함께 아주 많이 사용됩니다.

ITS. 지능형 교통망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도로 통제, 대중 교통 관리 등의 업무로서 이 업계도 아주 대형 프로젝트들이 줄을 잇습니다. 이쪽에는 C++빌더가 절대적으로 사용됩니다. ITS 업계를 지배하고 있는 두 대형 SI 회사가 오직 C++빌더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장비 연동과 실시간 통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유통 업계. 소매 유통의 경우 POS(계산대) 시스템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역시 실시간 통신이어야 하고 성능이 중요합니다. 할인마트, 백화점 등등의 계산대 뒤의 시스템들 중 상당수가 델파이로 되어 있습니다. 비슷한 업계로 택배 업계도 있고, 별로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다단계 업계에서도 델파이가 많이 사용됩니다.

이외에도 업무 개발에 사용되는 다른 예도 아주 많습니다. 예를 들면, 대법원을 비롯한 전국의 법원 전산망 시스템은 델파이로 되어 있습니다. 등기 업무 쪽은 자바로 개발되고 델파이는 재판 사무쪽 시스템이지만, 법원 업무의 꽃이 재판 쪽 아니겠습니까. 그 외에도 정부 산하의 업무 시스템에도 델파이가 아주 많이 사용되는데, 최근에는 법무부 산하 출입국 관리 시스템이 델파이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2년전에 제가 직접 PM을 맡아 개발 완료했던 국내 최대 결혼정보업체의 업무 시스템도 전면 델파이로 되어 있습니다.

아, 지금까지 말한 업계들은, 위에서 말했듯이 모두 ‘업무 개발’의 영역만 설명한 것입니다. 패키지나 솔루션 개발에 델파이가 사용되는 부분은 완전히 또 별도로 거론해야 합니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모든 압축 유틸리티들도 델파이로 만들어졌습니다. 호평받고 있는 텍스트 에디터인 아크로에디트와 이지패드도 역시 델파이 및 C++빌더로 만들어졌습니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거의 모든 데이터베이스 관련 툴들도 델파이로 만들어졌고, 최근에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APM 등의 모니터링 솔루션들도 델파이가 더 많습니다. 화상 회의나 원격 교육 등 화상 통신 관련 솔루션들도 델파이와 C++빌더가 훨씬 지배적입니다. 제가 아는 한 국내의 모든 회계 솔루션 패키지들도 모두 델파이로 만들어졌습니다. 뭐, 일일이 열거하기도 손가락 아픕니다.

그럼, 이렇게 많은 곳에서 델파이와 C++빌더를 사용하는데, 왜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사실 데브기어 이전에 국내 벤더였던 볼랜드코리아와 한국볼랜드 등에서 그다지 이런 사례 소개에 크게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또 국내 벤더의 잘못으로 델파이와 C++빌더의 업그레이드 내용 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으면서, 대규모 업그레이드 프로젝트가 적어진 탓도 있습니다. 또, 대규모 조직에 속한 개발자일 수록 소규모 기업의 개발자보다 커뮤니티 활동도 거의 하지 않고, 그래서 대규모 프로젝트가 별로 알려지지 않은 면도 많습니다.

물론 이런 대규모 델파이/C++빌더 레퍼런스들 중의 상당수는 자바나 닷넷으로 마이그레이션을 한번 이상 시도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들 실패했죠. 기능적으로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위에 설명했던 이유들 때문에, 자바나 닷넷으로 넘어갈래야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국내 지원이 부족하다보니, 대규모 업그레이드도 역시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시장 자체가 잠재된 상태입니다.

저와 데브기어에서는 이 잠자고 있는 델파이/C++빌더 시장을 깨우는 것을 단기적으로 가장 우선적인 전략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된 구버전 기반으로 개발 및 유지보수하고 있는 조직들에 최근의 델파이/C++빌더 버전을 소개하고, 또 라이선스가 부족한 경우에는 합법적인 구매를 계도하는 등의 활동을 올 한해 동안의 주력으로 삼고 있구요. 내년부터는 거기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더해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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