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짐승을 가축으로 길들이는 가장 무식하지만 효과적인 방법. 먹이가 될 짐승이나 풀들을 몽땅 다 거둬들이면 된다. 그럼 자연히 먹이가 있는 인간들에게 다가와 먹이를 구걸하게 된다. 먹이를 통제하면 아무리 사나운 들짐승도 무릎 꿇고 자존심을 꺾고 숙인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벤처기업을 길들인 방법도 같다. 대기업 하청을 하지 않고는 먹고 살 수 없도록 마트부터 구멍가게까지 모두 업계를 독점해버린다. 그러면 중소기업들은 이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대기업 밑으로 들어간다. 우리나라 경제의 대기업 독점 구조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건 유일한 원인도, 또 가장 중요한 원인도 아니다. 기업, 특히 대형화된 기업은 오직 이윤만을 좇아 동작하는 영혼 없는 기계라 윤리를 모른다. 그런데 왜 미국이나 서유럽 등에선 흔치 않은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일상적인 일이 되었을까. 그냥 정부의 무능 혹은 방관이 문제인가. 역대 정부가 대기업을 적극적으로 견제하지 않아서 벌어진 비극인가. 물론 그 탓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도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대기업이 시장을 독식하게 판을 만들어준 존재, 소비자의 역할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에 있었던 통큰치킨 사건을 돌아보자.
롯데마트가 파격적인 가격을 내걸어 큰 인기를 끌었던 통큰 치킨의 판매가 치킨집들의 큰 반발에 부딛혀 중단되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동네 치킨집들을 비난했었다. 물론 대기업도 거들었다. 우리 원가가 요정도밖에 안들었으니 밑지는 장사를 한 건 아니다, 즉 동네 치킨집들이 폭리를 취했다는 논리를 제공했다. 언론들도 그런 논리를 그대로 받아쓰기 바빴다. 5천원짜리 치킨을 못먹게 된 성난 대중은 동네 치킨집들을 악덕 상인들로 매도했다. 주재료인 생닭이 불과 몇천원인데 만 몇천원씩이나 받아먹는다고 비난한다면, IT 업계, 특히 SW 개발자들은 원가가 들어가는 것도 거의 없으니 그냥 무료 봉사하고 손가락 빨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통큰치킨 판매 중단에 대해 대다수 소비자가 대기업 편을 들어 치킨집들을 비난하는 사이, 약자 사이에 벌어진 싸움으로 인해 소수 대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은 한층 더 강해진다. 내가 치킨집으로 먹고 사는 게 아니니까 우리 동네 치킨집이 망하거나 말거나, 난 대기업 브랜드로 신뢰감을 주고 무조건 싼 것을 사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외면하는 국민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국민 스스로가 똑같은 회사의 똑같은 부품도 현대모비스를 통해 비싸게 구입하고 모비스에 납품한 원 생산업체 브랜드는 외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내가 속한 업계에서는 대기업을 비난하고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외치는 게 우리나라의 뒤틀어진 현실이다.
IT 업계에서 대기업의 횡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유난히 더 큰 것 같다. 이 업계의 우리는 과연 다른 업계에서 벌어지는 대기업의 횡포에 대해 함께 비난해주는가. 그냥 얼굴없는 회색 대중의 한 사람으로 남의 일이라며 모른체한 게 대부분 아닌가. 그래서 그쪽 업계 사람들도 IT 업계의 대기업 횡포에 대해 외면하고 말없이 동의하는 것 뿐이다. 중소기업이 만든 소프트웨어는 절대로 대기업 제품과 공정하게 경쟁하지 못할 것이다. 통큰치킨 판매 중단에 대해 동네 치킨집을 비난하는 목소리만 가득했던 일, 이마트피자가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일 등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의 독점적인 경제 지배 구조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계속될 것이 틀림없다.
우리나라처럼 좁은 시장에선 어떤 업계이든 시장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은 대부분 기업이 아닌 소비자다. 결국 대기업의 독점 구조는 소비자들이 만들어준 것이다. 중소기업을 등치는 대기업들의 압도적인 권력도 소비자들이 만들어 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생존권을 걸고 처절하게 사투를 벌이는 약자들에게 대기업이 자유시장경제체제 운운하며 뻔뻔하게 얼굴을 쳐드는 이유다. 대기업이 횡포를 부린다는 결과 면의 현실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대기업이 마음껏 횡포를 부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소비자, 국민들의 무관심이 아닐까.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면서도 할수 있는것이 없다는게 마음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