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MS와 오라클, 애플이 전방위적으로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제조사들을 위협하고 있는 특허 공세가 큰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블로그 글과 기사들에서, 이런 움직임이 윈도우폰의 점유율을 올리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는데요. 이런 추측은, 아마도 MS와 오라클이 요구한 대당 특허료를 지불할 경우 오히려 윈도우폰의 라이선스료를 넘어설 수 있다는 단순 계산에서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일단은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보입니다. 실례를 살펴보면… 삼성과 함께 주요 안드로이드 폰 업체인 HTC는 이미 지난해에 MS로부터 특허료 요구를 받고 꼬박꼬박 지불하고 있습니다. 한 분석에 의하면 HTC가 지난 한해동안 MS에 지불한 특허료가 수익 5억 달러중 무려 23%에 이르는 1억5천만달러에 이른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MS로 넘어간 특허료가 MS의 윈도우폰 매출인 3천만달러의 5배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엄청난 액수를 MS로 지불하면서도 HTC는 지금도 안드로이드를 여전히 주력 제품에 탑재해서 판매하고 있고, 윈도우폰7 기반 스마트폰은 올 가을에야 첫 제품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안드로이드 이전만 해도 HTC는 MS의 윈도우모바일 관련 주요 협력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더 재미있죠.
즉 HTC는 엄청난 액수를 특허료로 MS에 지불하면서도 여전히 시장성, 즉 실제로 팔 수 있는 수량 면에서 윈도우폰보다 안드로이드가 월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삼성이나 모토로라 등도 비슷한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입니다. 사실 세계적인 특허 공룡들 중 하나이기도 한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의 잠재적인 특허 문제를 몰랐을 리가 없고, 그런 리스크를 안고도 지금까지 안드로이드를 주력으로 밀고 있는 것이죠.
그래도 만에 하나, 만약 MS와 오라클의 특허 공세가 실질적으로 휴대폰 제조업체들의 안드로이드 채택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면, 그래서 안드로이드를 채택한 댓가로 MS와 오라클에 내는 특허 로열티가 윈도우폰의 라이선스료를 훨씬 넘어선다면, 과연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이 떨어지는 그만큼을 윈도우폰이 차지할 수 있을까요?
제 판단은 그렇게 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안드로이드가 가진 장점은 단지 아이폰 외에 채택 가능한 유력 OS라는 것과 무료라는 것 뿐만이 아닙니다. 탁월한 개방성이 있죠. 즉 어떤 제조업체든 가져다 맘대로 커스터마이즈해서 내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개된지 불과 몇년만에 안드로이드는 가장 많은 제조업체들이 휴대폰 및 태블릿을 내놓는 OS가 되었습니다. 이게 단지 비용이 공짜이기 때문일까요.
반면 MS의 윈도우폰은 이런 장점이 전혀 없습니다. MS의 윈도우폰 정책은 오히려 윈도우모바일 7 이전까지의 정책보다 더욱 경직되어 있습니다. SW 부분 뿐만 아니라 OS 주제에 하드웨어 스펙까지 강하게 제약을 해서, 기기의 패키지 디자인 정도만 빼면 제조업체가 맘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비용 부담 때문에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줄인다면 그 대안은 ‘안드로이드보단 덜 비싼’ 윈도우폰이 되기보다는 또다른 무료이자 자유로운 OS를 찾게 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는 것은 미고와 리모입니다.
미고는 아시다시피 리눅스를 기반으로 하는 인텔의 모블린과 노키아의 마에모 프로젝트가 합쳐져 만들어졌습니다. 즉 안드로이드처럼 무료이자 자유로운 변경이 가능합니다. 사실 모블린과 마에모가 통합되어 미고가 탄생한 이유 자체가 또다른 무료, 자유 OS인 안드로이드가 급부상하면서 ‘차기 대안’으로서의 자리를 위협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리모도 비슷합니다. 삼성, 모토로라, NEC, 파나소닉 등이 연합해 만든 단체이자 모바일 OS입니다. 결과적으로 지금에 와선 안드로이드가 대히트를 치면서 미고와 리모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입니다만.
하지만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에 대한 대안을 찾게 된다면 역시 가장 먼저 시선을 돌리게 될 것은 윈도우폰이 아니라 역시 리눅스 기반 모바일 OS들인 미고와 리모일 것입니다. 무료이고 자유롭다는 장점 외에도, 안드로이드와 기술적인 기반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즉 제조사의 입장에서 안드로이드에서 가장 빨리 옮겨갈 수 있는 OS라는 것입니다.
이 중 미고는, MS가 윈도우폰의 든든한 원군으로 믿어의심치 않고 있는 노키아가 심비안은 버린 반면 미고는 아직 품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미고 기반 스마트폰 시제품 N9도 내놓았고 커뮤닉 아시아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었죠. (노키아가 내놓으려는 윈도우폰 기반 제품도 이 N9의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엘롭 CEO는 그럼에도 심드렁하게 반응했지만. (엄청난 투자를 했고 호평을 받는 자사 제품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어처구니 없는 CEO죠)
한편으로 또 재미있는 것은, 노키아가 빠져나가고 인텔만 남은 미고 진영에 올 4월에 LG전자가 노키아 대신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물론 LG전자는 과거에도 MS와 구식 윈도우 모바일 기기를 수십종 출시하겠다고 협약을 맺고도 약속을 져버리고, 인텔과도 비슷하게 모바일 기기 출시에 대한 협약을 지키지 않은 전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에 올인하면서 LG전자의 움직임이 많이 달라졌고, LG의 입장에선 경쟁사 삼성과 달리 다양한 모바일 OS 라인이 없는 것이 취약점인만큼 미고에 상당한 투자를 실제로 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삼성전자의 경우엔 리모 그룹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고, 올 9월에 첫번째 리모폰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삼성은 독자 플랫폼으로 바다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향후 1~2년 사이에 안드로이드의 시장에서 공백이 생기는 경우 바다로 공백을 메꾸기에는 부족할 것이고, 따라서 안드로이드의 빈자리가 생긴다면 공격적으로 리모를 대체 투입할 가능성이 더 높아보입니다. 또, 또다른 리모 그룹의 일원인 NEC도 과거에 리모폰을 내놓은 적이 있는 만큼, 안드로이드 진영에 이상이 생길 경우 지체없이 리모로 돌아설 가능성이 상당하죠.
즉, 상당 기간 공을 들여왔음에도 안드로이드에게 사실상 리눅스 기반 모바일 OS 시장을 새치기(?) 당한 미고와 리모가, 안드로이드 시장에 이변이 생겼을 때는 지체 없이 시장에 대타로 뛰어들 수 있는 상태로 대기하고 있는 겁니다. 미고와 리모가 아직 메이저로 뜨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안드로이드이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 이들 리눅스 기반 OS들과는 전혀 성격도 다르고 정책도 다르고 기술도 판이하게 다른 윈도우폰이 안드로이드의 공백을 성공적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을 가능성은 그렇게 커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만약 MS가 윈도우폰의 정책을 180도 바꿔 제조사에 안드로이드에 준할 정도의 자유를 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그렇게만 한다면 시장엔 또다른 큰 변수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새로 판을 짜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정책 면에서 전향적으로 개방적으로 돌아선다고 해도, 리눅스와 비슷하지도 않은 MS의 독자적인 기술이라는 면에서 안드로이드의 공백이 생겼을 때 제조사가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이미 사용자들의 뇌리에는 스마트폰이란 아이폰 아니면 안드로이드라는 인식이 깊이 새겨진 상태인데, 미고나 리모를 안드로이드와 비슷한 느낌으로 만드는 것은 그닥 어려울 것이 없는 반면, 윈도우폰은 역시 기존의 스마트폰에 대한 이해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또다른 무엇입니다.
또 윈도우폰 정책이 대폭 수정되어서 제조사에게 안드로이드만큼 혹은 그에 준하는 수준의 자유를 준다면 일단 실버라이트를 비롯한 MS의 개발툴 전략 전반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MS의 수많은 제품 정책들은 기존의 독점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서로 다른 제품군들 사이에 기술들이 엮여 있어서, 한 제품군의 정책을 대폭 수정하면 다른 제품군들에도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적벽대전에서 조조는 해전에 익숙하지 않은 아군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슬로 배를 엮어 큰 효과를 봤지만, 결과적으로 화공을 당했을 때 한두 척이 아니라 줄줄이 다 침몰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죠. 그런만큼 MS는 윈도우폰의 정책을 단시간 내에 쉽게 수정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윈도우폰을 추종하는 분들은 여기서 또 한번 단골 레파토리로 ‘강력한 개발툴’을 들어 윈도우폰이 더 유리하다고 말씀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 아직 개발툴이 드러나지 않은 리모는 몰라도, 미고가 사실상 전용 개발툴로 삼은 Qt의 최근 버전을 보면 개발툴 경쟁 면에서 미고가 윈도우폰보다 딸린다는 말은 전혀 하지 못할 겁니다.
노키아가 어처구니 없는 바보짓을 줄줄이 연타로 한 것이, 노키아는 심비안과 마에모-미고를 키우기 위해 2008년 트롤테크로부터 Qt를 인수한 후 LGPL로 공개하고 엄청난 공을 들여 대단한 모바일 개발 플랫폼으로 성장시켰습니다만, 얼마전 윈도우폰 올인 선언을 하면서 Qt를 소규모 기업인 디지아라는 곳으로 팔아버렸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Qt가 노키아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도 할 수 있겠죠.
결과적으로, MS가 열심히 안드로이드를 공격해서 얻게 되는 것은 윈도우폰의 부상이 아니라 또다른 리눅스 기반 OS들이 원래의 가치를 주목받고 채택되는 기회를 주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장의 1, 2위가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3위를 차지하는 것이 MS의 단기 목표이지만, 특허 공세를 강화한다고 해도 HTC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안드로이드가 완전히 버려지는 사태는 일어나기 어렵고 그 틈새를 다른 리눅스 기반 OS들이 치고 올라가면, 윈도우폰은 의미가 있건 없건 시장 3위로 올라서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겨우 3위로 올라서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미고나 리모와의 치열한 점유율 경쟁 때문에 오히려 1, 2위인 아이폰, 안드로이드와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도 있게 됩니다. 즉, MS의 안드로이드 특허 드라이브가 단기적으로 성공적이 된다면, 오히려 그것이 윈도우폰에겐 자살골로 돌아올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거죠.
[…] MS의 특허 공세가 윈도우폰에 자살골이 될 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