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삼성전자를 포함한 대기업 PC 판매장에서 불법복제 사례가 다수 적발되었다고 보도되면서 큰 이슈가 된 바 있다. 그런데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이것을 소위 ‘깡통PC’에까지 확대해서 사태를 키워볼 셈인가보다. 아시다시피 ‘깡통PC’란 윈도우가 사전 설치되지 않은 채 하드웨어만으로 판매되는 PC나 노트북을 말한다. 깡통PC 판매는 곧 불법복제를 적극적으로 조장하는 행위라는 것이 한국MS의 논리다.
그런데 이런 깡통PC를 구입하는 이들이 윈도 OS를 구입해서 직접 노트북에 설치할리 만무하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한 관계자는 “제조업체들이 윈도 OS 불법 복제 환경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윈도는 빌려서 깔지” 속 빈 ‘깡통노트북’ 20대 사이에서 인기 (조선일보)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깡통노트북이 저작권 침해 우려가 높다고 지적한다. 이씨는 “깡통노트북을 산 후 정상적으로 OS를 구매할 것이라면 굳이 깡통노트북을 살 이유가 없다”고 했다. 깡통노트북이 불법 복제를 조장한다는 것.
사실 한국MS의 이런 이슈화 시도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10년도 훨씬 넘게 끈질기게 제기하고 있는 문제이다. “깡통PC=윈도우 불법복제” 이런 식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국내에 판매되는 PC 대부분이 윈도우를 설치해서 사용하고 있는만큼, 윈도우 OS 불법복제의 주요 경로가 깡통PC를 통해서라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역으로, ‘그러니까 깡통PC는 불법복제의 온상이다’ 라는 논리는 정당한가?
기업이나 PC방 등을 위한 라이선스들을 제외하면, 시장에서 일반 소비자가 윈도우OS를 합법적으로 구하는 방법은 세가지다.
1. 윈도우가 설치된 PC 구입
2. 깡통PC와 DSP버전 윈도우 구입
3. 깡통PC를 구입하고 리테일 윈도우 구입
법적으로 1과 2의 라이선스 측면은 동일하다. DSP는 하나의 PC에 대해서만 적용되기 때문에 다른 PC를 구입했을 때 옮겨갈 수 없다. 다만 1의 경우(OEM 라이선스)는 제조사가 일괄 구입한 OEM라이선스이기 때문에 전체 가격에서 카피당 윈도우의 가격 비용이 더 저렴하고, 결과적으로 1의 경우가 2의 경우보다 전체 비용이 더 싸게 든다.
그럼에도 DSP가 더 유리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사양과 가격이 적당한 노트북을 찜했는데 거기에 윈도우7만이 깔려 있고, 나는 어떤 이유로 윈도우XP가 필요하다. 그러면 깡통 노트북이나 윈도우7이 설치된 노트북을 구입해서 윈도우XP DSP를 깔면 된다. 이럴 경우 깡통 노트북이 유용하다. 왜? 난 윈도우XP를 쓸 건데 윈도우7의 가격이 포함된 노트북을 구입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또한 조립PC도 마찬가지다.
MS는 이런 경우 때문에 실제로 DSP 라이선스를 팔고 있으면서도 자기모순적으로 깡통CP가 불법복제의 원흉이라고 몰아가고 있다. 차라리 DSP라이선스 자체를 없애버리고 그런 주장을 하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사실상 모든 노트북에 윈도우를 사전 설치하라고 강요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에 독점력을 과도하게 악용한 것으로 되어 공정위의 철퇴를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DSP보다 더 심각한 것은 3의 경우처럼 리테일 라이선스를 구입하는 경우다. 리테일 라이선스는 PC를 얼마든지 교체해서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라이선스이고, 우리가 가장 흔하게 알고 있는 라이선스 종류이다. 그래서 모든 라이선스 종류 중 가장 비싸다. 그런데 깡통PC를 무조건 불법복제의 원흉으로 몰아버리면, 리테일 라이선스를 구입한 소비자는 더 비싸게 주고 구입한 라이선스가 정당하게 보장한 권리를 크게 손상당하게 된다. 깡통PC를 새로 구입할 수 있어야 리테일 라이선스를 다시 활용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결국 리테일 라이선스가 실제로는 DSP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MS가 깡통PC를 불법복제의 원흉으로 몰아가는 이유는, 리테일이나 DSP로 판매되는 비율이 전체 PC 판매 숫자에 비해 상당히 미미하다는 점과, 현실적으로 깡통PC가 불법복제에 많이 악용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수 사용자가 불법을 저지른다고 해서, 그리고 상대적으로 소수라고 해서 정품 사용자가 더 비싼 가격을 치르고 구입한 권리가 무시되어도 되는 것인가? 그것도 MS가 스스로 판매하고 있는 라이선스인 DSP와 리테일 라이선스에 모순되게도 말이다.
또한 역설적으로, MS는 OS 사전 탑재가 아닌 리테일/DSP 등의 별도 판매로 큰 회사다. 애플을 포함한 다른 대부분의 경쟁사들이 OS가 하드웨어와 일체화된 제품을 판매하는 반면에, MS는 IBM의 PC-DOS를 OEM 번들하게 되면서 깡통 PC용으로 판매한 MS-DOS를 별도 판매하면서 놀라울 정도의 큰 폭의 성장을 했다. 즉 MS는 역사상 깡통 PC의 혜택을 가장 크게 본 기업이다. MS-DOS를 이은 윈도우 역시도 깡통 PC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성장을 할 수 있었고. 그런 MS가 이제 와서 깡통 PC를 범죄의 원흉 취급하는 것은 너무나도 이율배반적이고 염치 없는 짓이기도 하다.
즉, 결론적으로 깡통PC를 불법복제와 직접 연관시키는 것은 오히려 MS의 정품 사용자들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게 되고, 또한 OEM을 통한 소극적인 고객보다 DSP, 리테일 라이선스를 적극적으로 구입한 고객의 권리를 배신한다는 면에서 도의적으로도 큰 문제가 있다. 또한 MS가 벤처를 벗어나 세계 최대급의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체가 되도록 키워준 조립 PC 업계에 대해서도 배신일 수 있다.
물론 실제로 깡통PC가 불법복제의 주된 경로로 이용되는 것은 사실로 보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MS의 사정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자사 고객의 선의까지 배신하는 선이면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것이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이런 주장을 계속 이슈화하려는 시도를 그만두어야 하고, 언론사와 기자들도 이런 앞뒤가 모순되는 언론 플레이에 동화되어 그럴 듯한 부분에만 집중하여 기사화해서도 안된다. 언론사와 기자는 현실을 알기 쉽게 보여주는 ‘창’임과 동시에 반대로 현실을 왜곡시켜 문제를 심화시키는 주역이 될 수도 있다. 좀 더 책임 있는 보도를 해주기를 바래본다.
꼭 Windows를 쓴다는 법은 없잖아. 리눅스를 쓸 수도 있고 여러가지 자유로운 점이 많으니까
깡통 PC를 쓰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