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대세론과 Delphi에 대하여

(방금 델마당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뜬다, 대세다, 트렌드다, 혹은 반대로, 진다, 사장된다, 레거시다, 이런 말에는 거의 항상 공통점이 있습니다. 근거가 없거나 빈약하다는 공통점이죠. 어떤 업계이든 만능은 없습니다. 업계나 업무마다 다른 무엇보다는 더 최적화된 선택이 있을 뿐이죠.


SW 업계에서 대세나 트렌드라고 하는 것은 대체로 허수가 많이 껴있습니다. 제가 C를 처음 공부하던 91년 전후에는 개발 문외한인 일반인들조차 C가 절대적인 대세라고 줏어듣고는 업무 프로그램도 C로 만들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하곤 했죠. dBASE나 클리퍼 같은 거면 며칠이면 만들 것을 C로 몇달을 삽질하곤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지금도 C++과 델파이의 관계와 별 차이가 없군요. 델파이가 C++의 영역을 거의 모두 커버한다는 것 빼고는요.


현재 델파이보다 자바가 더 많이 사용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자바가 모든 개발을 커버할 수 없는 만큼 델파이가 자바보다 더 좋은 선택인 시장도 충분히 큽니다. (닷넷은… MS가 자바 꺾자고 10년간 엄청난 삽질을 했는데도 아직도 델파이보다도 한참 시장이 작은 닷넷은 논의의 가치조차 없죠)


이런 너무나 당연한 원리를 무시하고 대세나 트렌드를 논하는 사람은 그 본인이 대세나 트렌드를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만고불변의 ‘대세’는, 전천후의 만능의 대세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각 업계와 목적마다 최적의 ‘대세’가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자바가 아무리 떠도 그 누구도 자바로 압축 프로그램이나 인스턴트 메신저, CD 라이팅 툴을 만들지 않고 만들어봤자 실패하는 것과 같은 문제입니다.


IT업계에서 대세나 트렌드를 논해야 할 사람들은 마케터와 영업맨 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아이디어가 좋고 영향력 있는 학자나 엔지니어가 새로운 컨셉을 만들어내면 영업맨과 마케터들은 앞다퉈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미약한 시장을 엄청나게 큰 것처럼 과대포장을 합니다. 그리고 고객에게는 당장 돈을 털어내지 않으면 큰일날 것처럼 반 협박을 하고 서로 앞다퉈 돈을 내놓게 되도록 만들려고 온갖 수단을 다 씁니다.


마케터와 영업맨들은 IT 소비자들이 자신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와 기술의 핵심보다는 공포심과 경쟁 심리에는 쉽게 움직인다는 점을 파고 십분 활용합니다. 그래서 산책이나 여행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러닝머신을 팔아넘기고 강력한 성능과 편리한 UI의 네이티브 시스템이 필요한 기업에 온갖 비즈니스 용어로 덕지덕지한 웹 가상머신 시스템을 훨씬 비싸게 팔아넘깁니다.


개발자 여러분이 만든 프로그램과 시스템으로 여러분의 고객, 사용자들을 만족시켰다면 그것이 진정한 대세입니다. 그럼에도 만족한 사용자들조차도 화려한 미사여구로 치장된 허황된 ‘대세’에 자꾸 눈이 갑니다. 그것이 바로 거대 IT 벤더들이 엄청난 돈을 들여 마케팅을 하는 이유이자 보람인 거죠.


이런 판국에 델파이만 언제까지나 ‘사실은 우리 것이 더 좋아’ 라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저희 데브기어에서도 마케팅으로 응수하려고 합니다. 지난해부터 착착 준비해왔던 계획이 있고, 이제 다음달부터 첫발을 딛습니다. 어마어마한 마케팅 펀드는 없지만, 가능한 최대한 짜내어 최대한 효율적으로 쓸 생각입니다. 그리고 매 분기, 또 매년 투자를 더 늘려나갈 것입니다.


물론, ‘그럴 돈으로 기존 개발자들을 위한 리소스나 더 만들지’라고 생각하실 개발자분들도 적지 않을 겁니다만, 지난 십수년간의 공백이 너무 커서, 이제는 도저히 우리 델파이 개발자들의 내부적인 자부심과 실질적인 이점을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더 버틸 수가 없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델파이보다 훨씬 시장이 적은 닷넷이 델파이보다 더 커보이는 착시 현상까지 발생하는 판국이니까요.


저희 벤더측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는 동안, 델파이 개발자 여러분들도 함께 힘을 모으면 그 효과가 더욱 배가될 것입니다. 크게 어려운 일을 당부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델파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숨김없이 알리시면 됩니다. 우리가 쓰고 있으면 우리 회사에서는 델파이가 대세이며 다른 업계는 어떻든 별 상관 없다, 라는 자신감으로요.


지금도 우리나라의 곳곳에서 엄청나게 많은 개발자들이 델파이로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몇배나 많습니다. 그런데 바로 인근의 잘 아는 업체에서도 델파이를 쓰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근방 업체들은 대부분 아는데, 저희 회사만 델파이를 써요’ 이러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 자신도 주위 업체에 델파이를 쓰고 있다고 말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병원 업계의 경우처럼, 해당 업계에서 50% 이상 델파이를 사용하는 경우조차도 ‘우리만 쓰고 있어요’ 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델파이의 세력이 실제보다 형편없이 작아보이는 겁니다.


델파이의 위상을 제대로 세우고 델파이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루는 데에는 적어도 몇년은 걸립니다. 저희도 그럴 각오를 하고 시작했습니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대세가 아니어서’ 라든지 ‘죽어가는 기술 아니야?’ 라든지 ‘아직 델파이 쓰는 곳이 있어요?’ 라든지 이런 얘기들을 더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업체 방문을 자주 다니니까 그만큼 자주 듣습니다) 스스로의 무지함을 드러내는 그런 말을 듣고 설득하고 굴복시킬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최소한 꺾이지는 마십시오. 영광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니까요.

————————————————————————-
(아래는 델마당의 위 원문을 쓴 후 UX 이슈에 관련하여 다시 리플로 쓴 글입니다)

위 경민님 말씀처럼… UX를 화려한 그래픽 효과가 메인인 것으로 착각하면 주객이 전도되는 겁니다. 아무리 그래픽 효과가 발전하고 새로운 방식이 나오더라도, UX의 근본이자 핵심은 사용자의 편의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더 예쁜 그래픽 이미지, 애니메이션이 UX라는 건 착각일 뿐만 아니라 최종 사용자를 무시하는 겁니다.


특히 지난주 델파이 관련의 의료정보화 세미나에서 양병규님이 멋진 발표를 해주셨는데… 사용자의 요구에 맞추어서 해당 업무에 최적화된 인터페이스를 구현하다보니 플래시나 실버라이트, X인터넷 등으로는 도저히 구현이 불가능한 특이한 입력 인터페이스 컴포넌트들을 개발해서 적용하셨고, 그 결과 최종 사용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사실 제가 이번 세미나 준비차 여러 병원들을 직, 간접적으로 접촉했는데, 양병규님이 구현한 사례에 대한 호평이 다른 경쟁 병원들에까지 많이 퍼져 있는 상태입니다.


제 경우에도 업무 프로젝트 프레임워크 작업을 여러번 했고, 지금도 진행중인데, 해당 업체 엔드 유저들의 업무 관행을 살펴보고 필요하면 거기에 최적화된 새로운 입출력 컴포넌트를 새로 만듭니다. 똑같이 델파이로 업무 시스템을 개발하더라도, 이렇게 개발한 시스템은 사용자들의 만족도에 있어 수준이 다릅니다. SI에서 흔히 홍보성으로 내뱉는 말뿐만이 아닌, 정말로 전사적인 업무 효율이 크게 향상되고요.


반면, 자바에 RIA나 X인터넷을 붙여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보면, 이렇게 업무에 최적화된 UX가 필요한 경우 그냥 갑 측의 전산책임자와 협상으로 끝내버립니다. 왜일까요? RIA나 X인터넷 정도의 짝퉁 기술로는 최적화된 UX, 즉 사용자 경험을 설계한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하찮은 클라이언트 기술을 다루는 개발자들이 UX를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정도입니다.


UX를 논하는 데 있어 가장 적합한 개발툴은 델파이입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델파이 개발자분들이 UX에 있어 델파이가 뒤쳐져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거 같은데요. 좀 듣기 싫은 말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기존의 컴포넌트들을 배치해서 ‘적당한 수준에서’ 업무 개발을 하는, 즉 ‘타성’에 젖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 comments for “IT 대세론과 Delphi에 대하여

  1. 마케팅 힘내시길!

    확실히 아무리 내가 좋은걸 쥐고 있어도 일단 끌어 들이지 않으면 소용 없는듯..

  2. 12년째 주로 델파이로만 개발한 개발자로서 이처럼 쉽게 사용자의 요구를 개발해줄 수 있는 툴도 없는데.. 트랜드가 뭔지.. 경영자가 자꾸 구시대의 툴이라고… 신규사원들은 델파이를 모르니 바꿔야 한다는 압력을.. 델파이가 매우 괜찮은 개발도구임을 만 천하의 경영자들에게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